덴마크 라이프#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덴마크인들
코펜하겐 공항에 내리던 순간부터 매일매일 나를 놀라게 했던 사실이자 의문 한 가지, 그건 바로 덴마크인들의 영어실력에 있었다. 영어권이 아닌 국가에 지내면서 이렇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했으며, 사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미국 땅 한 번 밟은 적이 없는데도 유학 중인 나보다 더 영어에 능숙한 사람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아... 해커스(영어학원)에 쏟아부은 내 피 같은 돈! 자괴감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도 매일같이 이를 느낀다고 했다. 그녀는 덴마크 특유의 모음 때문에 다소 웅얼웅얼하는 엑센트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있어서 덴마크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어 문장을 잘 만들어 낸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도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수 또한 많았다. 대체 왜?
먼 옛날의 한 뿌리이자 유사한 알파벳 체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덴마크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지내던 때에는 이탈리아 사람들과의 영어 의사소통이 거의 재앙 수준이었던지라 집 계약을 하거나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난감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은 알아도 의식적으로 안 쓰는 편이고, 독일만 해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고 한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나라들은 내 기억으론 거의 북유럽 국가 위주로 몰려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제2 언어로서 영어를 잘하는 나라들로 덴마크를 비롯해,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가 상위 5개국으로 꼽혔는데, 지리적 위치를 보면 이들은 전부 북유럽이다. 그들의 영어능력은 북유럽국의 보편적이고 윤택한 교육환경 덕을 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덴마크로 돌아와 보자. 통계상 국민 80프로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그들은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나같이 같은 답을 얘기한다. "우리는 더빙 없이 드라마나 영화를 봐"
... 에~ 고작 그거? 그건 한국도 마찬가진데!
조금 더 얘기해 보라고 다그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들의 영어실력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덴마크어의 희소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입지
덴마크어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어려운 언어이기도 하고, 그 어려운 언어를 쓰는 이 나라의 인구는 550만이 약간 넘는 정도로 우리나라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적은 인구가 자신의 나라 언어만 고집하며 살았다면 위치적으로나 문화, 경제적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도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덴마크어를 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아주 극소수이다 보니 지구촌 세계에서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나라에서 장려하기 시작해 영어를 겸용하기 시작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둘째, 잦은 영어 노출과 실용적 회화 위주의 교육
허무하게 들렸던 친구들의 '더빙 없이 보는 외화들'이라는 대답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아기 때부터 원어가 그대로 송출되는 만화, 드라마, 영화들을 꾸준히 봐왔고,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는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자막 없이' 영화나 TV쇼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막 없이 내용을 백 프로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보다 보면 익숙해진단다. 당장 오늘부터 영화를 볼 때 '자막 끄기'버튼을 누르고 봐야 할까? 또 덴마크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시험과 암기 위주의 학습 대신에 영어로 자신 있게 토론하고 또 자유롭게 소통하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문법과 단어를 테스트하는 암기 위주의 영어능력을 강조했던 시기에 교육받고 자랐다(7차 교육과정). 중학교 때무터 의무교육으로 영어를 공부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지금까지의 교육이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을 하기 위해 영어가 언어의 수단으로써 꼭 필요했던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쓸모없는 내신과 수능시험용 영어를 전부 해체하고 말하고 듣는 위주로 쌓는 작업을 다시 해야만 했다. 덴마크에서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자유자재로 영어를 말하고 듣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영어를 접하고 유연한 교육을 받았다면 나도 뒤늦게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한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은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주는 문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 덴마크인들은 두 개의 세계를 능숙하게 오갈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왠지 모르게 두렵기만 한 ENGLISH, 덴마크인들처럼 공부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