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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Nov 15. 2018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코펜하겐의 공원묘지

덴마크 라이프# 아시스텐스 공원묘지  


 

죽은 후의 공간은 산 사람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머니의 대지로 되돌아가는 산소,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수렴하는 납골당, 한 그루의 나무에 영혼을 묻어두는 수목장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얼핏 보면 전부 다르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이곳들은 모두 하나같이 엄숙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지 20년도 더 된 할아버지의 묘소를 방문하는 지금까지도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거대한 공기가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는 것 만 같다. 발걸음도 조심, 말도 삼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보이지는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삶이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구나 하고. 


  

코펜하겐, 아시스텐스 공원묘지


반면, 코펜하겐의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시스텐스 묘지에서 나는 생기 넘치고 자주 발길을 끌어당기는 죽은 자 들의 공간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들어선 그 공원묘지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하늘을 떠받치는 듯 뻗어있고, 길게 늘어선 중앙통로의 양쪽으로 자잘한 오솔길들이 잔뿌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앨리스의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듯 한 묘한 느낌으로 그 자그마한 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길의 마디마디마다 묘지들이 나무들 사이로 질서 없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일반적인 묘지부터 재미있는 형태의 묘지, 자신의 사진을 붙여놓은 묘지, 땅에 박혀있는 묘지, 고인돌같이 생긴 묘지에서 천사 석상이 세워진 묘지까지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놓아두고 간 꽃과 양초, 편지에 남겨진 온기로 보아, 아직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있고 또 사랑받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있어 묘지란 추모를 하러 가는 일 이외의 다른 용도가 없는 곳인데, 이 곳은 특이하게도 일상의 용도로도 활발히 쓰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지켜보면 아시스텐스 묘지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부터 아이들을 데려와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사람,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깔깔 웃으며 수다를 떠는 친구들까지 볼 수 있다. 누군가의 묘지 앞에 담요를 깔아놓고 한창 키스를 나누고 있는 연인들을 보며 처음에는 '쟤들 저래도 되는 거야!?' 했지만 나중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익숙해졌다. 본디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랑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종종 들러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곤 했던 이 곳.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 진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그런 묘지. 날이 어둑해지면 조금 무섭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우면서 동시에 일상생활과 자연스레 공존하는 공동묘지를 가만히 걷다 보면, 삶과 죽음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조우하고,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웃음 짓고, 대화하고, 사랑하고, 운동하고, 사색하며 무덤이라는 장소는 단순히 엄숙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생기 있는 풍경들로 채워져 간다. 지금 이 곳에서 생을 누리던 사람들도 언젠가 땅 속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고, 그 빈자리가 동시에 다음 세대의 삶의 공간으로서 이어지며 아시스텐스 묘지는 그렇게 맥을 이어갈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으며 죽음이 일상으로 녹아들어 묘한 평화로움을 선물하는 그곳에서 나는,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죽음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웃음과 음악이 있고,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유리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워낙 나무들이 많아 가을엔 정말이지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The boundaries which divide Life from Death are at best shadowy and vague. Who shall say where the one ends, and where the other begins?'- Edgar Allan Poe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란 모호하고도 불분명하다. 감히 어느 누가 그 끝과 시작을 가늠할 수 있을까  -  에드거 앨런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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