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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Nov 14. 2018

당뇨를 부르는 코펜하겐의 겨울, 달콤한 디저트의 천국

덴마크 라이프# 케이크와 패스트리, 크림 볼과 젤리 




덴마크에는 생일이거나 특별한 기념일을 맞이한 사람들이 회사로 패스트리나 케이크 혹은 달콤한 사탕을 가져오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생일뿐 아니라 큰 공모에 당선되거나, 임신과 휴직 등 개개인의 각종 축하할 일들에는 무조건 케이크가 따라온다). 생일인 사람들이 ‘안녕!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다이닝 테이블에 케이크를 가져다 놓았으니 마음껏 즐기세요’라는 이메일을 보내면 사람들은 하나 둘 서둘러 식당으로 향한다. 직장동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준비하는 건 봤어도, 제 손으로 직접 준비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에 생소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바쁜 관계로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비슷한 케이크를 사 오지만 가끔 운이 좋으면 조금은 못생겼지만 구수하고 맛도 뛰어난 홈메이드 케이크를 맛볼 수도 있다. 케이크 대신 크림 볼이라 불리는 Flødeboller을 사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는 바닐라, 딸기, 민트, 코코넛 맛 크림에 초콜릿 코팅을 씌운 디저트다(당도가 너무 높아 나는 잘 먹지 않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패스트리와 케이크   photo credit: scandinaviastandard.com
크림볼이라 불리는 Flødeboller / photo credit: scandinaviastandard.com



이 전통과 별개로 회사에서는 매주 목요일 점심 후 디저트로 케이크를 제공하고, 때에 따라선 금요일 오전에 데니쉬 패스트리가 산더미처럼 배달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덴마크의 이런 너그러운 디저트 문화가 너무 좋다고 만세를 부르며 케이크를 즐겼다. 그런데 9월 말이 되자 과당 섭취로 인해 심장에 약간 무리가 온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월요일에도 케이크를 먹었는데 수요일에도 먹고, 목요일엔 점심 케이크 후에 젤리와 사탕까지 곁들였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니 피날레로 룸메이트가 패스트리를 오븐에 구워 크게 한 접시 내미는 게 아닌가! 아... 아마도 심장에 무리가 오는 듯 한 그 기분은 하루에 디저트류를 두 번 세 번 먹고 난 뒤의 심리적인 당뇨였던 듯 싶다.  



photo credit: vintagekitchennotes.com



하필 9월에 왜 이렇게 많은 케이크와 패스트리들을 먹게 된 걸까? 드림 케이크라 불리는 덴마크의 전통 디저트를 먹다가 동료들과 추측하기를(한 달 동안 8명 정도의 생일이 몰려있었던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만들어지기 때문 아닐까 했다. 크리스마스 베이비에 더불어, 덴마크처럼 우중충하고 해를 많이 못 보는 날씨(심지어 추운)에서 살다 보면 딱히 이유 없이 몸이 피로하고 우울감을 느낄 때가 많아 사람들이 단 것을 즐겨 찾게 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크리스마스 베이비는 확실치 않지만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축 늘어져 있다가도 바삭하고 달콤한 패스트리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도파민이 폭죽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터에게 위험한 덴마크의 베이커리
보기만 해도 달지 않나요? 이 많던 젤리들은 반나절이 지나자 모두 동이납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월요일 오후, 내 큰 얼굴에 맞먹는 거대한 패스트리가 유기농 사과주스와 함께 다이닝에 등장했다. 하얗고 예쁜 천이 살포시 패스트리 바구니를 덮고 있었고, 그 위엔 사랑스러운 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가을을 뒤로하고 해가 짧아지며 추운 겨울이 어느새 코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겨울의 문턱에 서 있는 오늘 고객님께 이 달콤한 사과주스와 패스트리를 선물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식사 되세요’. 시나몬 향을 입은 갖 구운 빵에 동봉된 그 편지는 사람들에게, 겨울을 맞이하기 전 향긋하고 따뜻하게 마음까지도 배부르길 바란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터링 서비스의 의도와는 달리 회사의 다이닝에서는 '이번 달에는 왠지 돼지가 될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데 전보다 숨이 차다'는 불평 아닌 불평이 오가기 시작했다. 단 것을 많이 먹게 된 문화는 사실 사람들을 살찌워 혹독한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에 대비해 최적의 신체조건을 만들려는 덴마크의 정부의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음모론까지도 제기되었다. 



photo credit: copenhagencakes.com



그렇다면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주 동안은 조금 덜 먹어보려 노력했으나 결국 처참하게 실패했다. 덴마크의 패스트리는 굉장히 맛있기 때문이다. 방금 오븐에서 나온 빵, 시나몬과 살짝 그을린 설탕코팅 냄새를 선비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코펜하겐에서의 이러한 과당 섭취로 인해 나는 결국 하루에 자전거를 한 시간 이상씩 타며 떠나보냈던 내 지방들과 재회하게 되었다(다시 오지 않기를 바랬건만). 한국에 돌아와 만난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물가 비싸다더니 잘 먹고 잘 지냈나 보네!'라며 내 포동포동함을 비웃었다. 하지만 당뇨와 비만을 조금만 조심한다면, 달콤함을 즐기는 것은 이 춥고 어둡고 기나긴 겨울을 견디는 하나의 지혜인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코 끝 시린 겨울이 돌아오니 작년의 그 달달한 패스트리 한 조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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