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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Nov 11. 2018

깨끗한 공기 속 아이들과 함께하는 덴마크 로컬 축제

덴마크 라이프# 코펜하겐 농장 축제 체험기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몇 일째 산책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슬픈 가을의 끝자락, 매캐한 창 밖을 내다보다 나는 잠시 코펜하겐의 쾌청한 어느 가을 날을 떠올렸다. 작년 9월의 주말, 나는 친구와 함께 Sydhavnstippen이라는 코펜하겐 교외의 농장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지역 생산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온 가족이 함께 주말 하루 즐겁게 놀고 갈 수 있는 이벤트, Harvest Festival에서 일손을 돕는 거였다. 사실 말이 봉사활동이지 몸을 조금 쓴다는 것 말고는 시골 들판에서 콧바람 쐬는 기분으로 다녀온 나들이에 가까웠다.

*CphVolunteers(cphvolunteers.kk.dk)라는 웹사이트에 가면 달마다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의 참여자 모집공고가 있어 원하는 날짜, 원하는 행사를 골라 신청할 수 있다. 서포터스가 되어 코펜하겐의 문화를 한 발짝 가까이서 체험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자전거로 한 시간을 달려 만나게 된 한적한 마을의 작은 농장. 그곳에는 나와 내 친구 엘렌처럼 자원해서 온 친구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가 덴마크인 남편을 만나 정착한 히토미, 건축을 공부하고 덴마크로 가구를 공부하러 와 결혼도 하고 갓 태어난 아기도 있는 이샤, 그리고 그녀의 호탕한 친구, 중국에서 와 9년째 코펜하겐에 거주 중인 판판, 불가리아에서 온 라드카, 인근의 주민인 나나, 동네 아저씨를 따라 4년째 자진해서 일손을 거드는 요하네스(경력직)도 있었다. 





<Harvest Festival, 주말농장 프로그램>

-손수 사과를 따와 만드는 사과주스  

-양봉장 견학과 벌꿀 시식  

-덴마크의 전통 담금주 스냅 스토어  

-주스를 만들고 난 찌꺼기로 차 만들기, 사과나무 씨 심기

-지역에서 난 곡물로 직접 만들고 굽는 곡물 쿠키 

-곤충으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함께 곤충요리체험

-버펄로 바비큐, 양고기 수프(비건은 채식 수프)와 함께하는 점심 피크닉

-아티스트 선생님과 함께 조형물과 액세서리 만들기

-오늘은 내가 건축가, 곤충 아파트 지어주기 



이처럼 축제에는 메인 프로그램인 사과주스 만들기와 양봉체험 말고도 곤충으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도 있고, 실과 천으로 조형물을 만드는 예술가도 있었고, 아기자기한 소형 액세서리를 만드는 섹션과 대형 프라이팬에 오가닉 밀가루로 직접 빵을 빚고 굽는 섹션도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들의 향이 코 끝에서 부터 밀려 들어와 식욕을 돋우고, 목가적인 풍경에 아코디언 연주자가 음악을 얹으며 축제가 완성되었다. 이 작은 공터에 어찌나 아기자기하게 잘 꾸려놓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꽃과 열매를 넣고 담근 덴마크의 전통주, 스냅



처음 일을 분배할 당시 술을 좋아하던 나는 담금주인 스냅을 서빙하는 일이 재밌을 것 같다고 아주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스냅 파트로 가고 싶다던 바람은 담당자의 미소와 함께 묵살되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는 법. 내 반짝이는 눈빛과 술을 향한 열정에서 위험을 감지한 모양이다. 나는 덴마크의 소주 격인 스냅 대신 건전 하디 건전한 사과주스 만드는 직무로 보내졌다. 술 부스로 가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주스로 보내버리다니! 좌천당한 기분으로 축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의 실망감과는 달리 그 작업은 모든 봉사활동 중 가장 재밌는 작업이었다. 사과주스를 만드는 총책임자는 스웨덴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어 덴마크로 건너온 피터였는데, 그는 이 지역과 축제에 애착이 많아 프로그램부터 크고 작은 도구까지 만들어내며 매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신박하게 디자인된 아이디어 기구들이 많아 감탄했더니 이내 자신을 발명왕 피터라 불러달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텍사스 록스타를 연상시키는 말투에 시종일관 유머스러운 아저씨 덕분에 처음의 뻘쭘함은 이미 저 멀리 날려버리고 놀듯이 재밌게 일했던 것 같다.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사과주스 만들기 부스
칼로 사과를 1차적으로 쪼갠다



사과주스 섹션의 작업방식은 이러했다. 뜰채처럼 생긴 긴 막대를 들고 사과나무가 지천으로 열린 야생의 들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노지사과를 바구니 가득 들고 와 깨끗한 물에 씻는다. 그다음 칼로 작게 자르거나 방망이를 이용해 1차적으로 빻는다. 2차로 수동 분쇄기에 넣고 돌려 작은 단위로 잘게 부수면 착즙을 위한 준비가 끝난다. 마지막으로 압착기에 넣고(이것도 역시 수동) 즙을 짜내면 드디어 싱싱한 유기농 사과주스를 얻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병을 챙겨 와 한가득 사과주스를 담아갔다. 사과주스 만들기 부스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기에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말은 안 통해도 아이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수줍은 얼굴로 꼬물꼬물 곧 잘 따라 하고, 덴마크어로 Fint!(내가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덴마크 말 중 하나, '멋지다'는 뜻)라고 칭찬해주면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늘 사랑스럽다. 



사과주스 만들기의 첫번째 관문, 으깨기
성실하게 기계처럼 사과를 으깨는 아이, 물에 씻으랬더니 때려치고 먹는아이, 뜻대로 안 된다고 울먹이는 아이 등
사과주스 만들기의 마지막 관문, 즙짜기. 오른쪽이 사과농장의 대장이자 발명왕 피터아저씨
수동레버를 끝까지 돌려 즙을 짜낸다. 진짜 100% 유기농 사과주스



그 많던 사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전기를 쓰지 않고 모두 아날로그로 하는 착즙 과정이기에 한 무더기의 사과를 따와야 간신히 한 병의 사과주스를 얻을 수 있었다(단점, 가성비가 떨어짐). 이게 다냐며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병에 담긴 주스를 온 식구가 조금씩 아껴 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갑자기 소유욕이 폭발해 초원으로 다시 뛰어가 사과를 한 트럭 따와서는 이두박근이 터질 듯 착즙기를 돌려 5리터들이 병을 꽉 채워가던 아빠들도 있었다.



차마 도전해볼 수 없었던 곤충요리



점심시간에는 양고기와 야채를 넣고 푹 고와낸 수프와 두툼하게 썰어 푸짐하고 냄새도 안 나게 잘 조리된 버펄로 바비큐, 사워도우 빵 한 조각과 설탕 한 톨 들어가지 않고도 충분히 달고 향긋한 사과주스를 먹었다. 열심히 일을 한 후에 먹은 음식이라 그런지 더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아침나절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으나, 이벤트가 시작하면서부터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떠오른 햇살 덕에 반팔 차림으로 모닥불 앞에 앉아 오랜만에 일광욕을 하며 느긋하게 점심을 즐겼다. 



맑고 쾌청한 일요일 오후, 이 작은 시골 동네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자연에 파묻혀 무언가를 만들고 먹고 마시는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보는 아이 하나 없이 모두가 호기심 반짝이는 눈으로 설명을 경청하고, 고사리 손으로 가을을 맞은 대지의 축복들을 체험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다섯 살배기 아이가 수줍은 듯 다가와 선물로 주고 간 사과 한 알을 경쾌하게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했다. 

'얘들아, 오늘 밤 사과처럼 달콤한 꿈 꾸렴'  

   


사과찌꺼기를 집으로 담아가 차로 만들어 마시는 법을 알려주는 중, 씨는 땅에 다시 심는다. 
사과주스 만드는 부스
조물조물 곡물쿠키 만들고 굽기 
직접 채취한 유기농 벌꿀, '한 스푼 더주세요!'






(*잘못 기재된 내용이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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