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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Oct 22. 2018

덴마크 사람들의 잔인한 평균 신장

덴마크 라이프4#  북유럽 사람들의 키 




친구가 어느 날 시무룩한 얼굴로 다가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 있잖아... 너무 슬펐어.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손을 아무리 쭉 다 뻗어도 닿지 않는 거 있지?" 

그 말을 듣던 나는 순간 얼굴이 하얘진다.

"지하철에 손잡이가 있었어...?"


그렇다. 손잡이는 늘 자리에 있었지만 내 눈높이에서는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게 덴마크인이 난쟁이들을 욕보이는 방식이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 곳 사람들의 신장에 대해 설명하자면, 자전거의 안장은 잔인할 정도로 높아 섣불리 남의 자전거를 타보겠다고 덤볐다간 말 못 할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길에 굴러다니는 덴마크 사이클러들의 다리는 때때로 반으로 접어도 나보다 길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옷가게에서 너무 갖고 싶은 코트를 발견해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바람에 부리나케 도망 나올 때도 있었다(여러분, 유니클로의 바지 길이가 나라별로 다르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저는 북유럽에서 바지를 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인종이 달라도 같은 인간인데 이건 마치 신의 장난 같기도 하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신께서 아마도 나를 만들던 중 '다리 길이' 약을 넣다가 미끄러져 병을 깨뜨린 모양이다.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로는 룸메이트가 있었다. 집안에서 걸어 다닐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이고, 공간대비 사람의 길이감이 유독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보았다. 자기 집에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지나가는 모습을. 그에게 너 대체 키가 몇이냐고 물었다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96센티미터

"....!??!"

내가 지금 2미터에 육박하는 사람과 살고 있었단 말인가! 한국에서 내가 본 가장 큰 친구는 194센티미터의 배구선수 출신이었는데. 농구선수도 배구선수도 뭣도 아닌 평범한 덴마크인의 키가 196이라니! 침을 꿀꺽 삼키고 덴마크인들의 평균 키를 물었더니 여자는 잘 모르겠고 남자는 185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정확하게 남자는 182.5 여자는 170 정도라고 한다). 아, 그랬구나… 이러니 지하철 손잡이에 손이 안 닿지….   



이 장대같은 인파 속에서 일행을 찾기 위해 난간을 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공연은 커녕 앞사람의 뒷통수도 보이지 않았다. 내 시야엔 사람들의 등판과 어깨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들은 환경적인 윤택함과 육류와 유제품을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 유전적인 이유로 몇십 년 동안 다른 국가들에 비해 평균 신장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고 한다. 영국계 미국인으로 180에 달하는 장신을 자랑하는 내 친구는(여성) 미국에서 살던 당시 너무 거인처럼 보일까 봐 항상 움츠리고 다녔었는데, 덴마크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사람들 사이에 아담하게 파묻히는 행복을 느껴봤다고 한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내게는 굴욕적이었던 신장 차이가 그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키 큰 이성을 찾고 있다면, 덴마크로의 원정을 적극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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