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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한량 Oct 19. 2018

코펜하겐 프라이드 페스티벌

덴마크 라이프 3#  퀴어축제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의 축제의 장 ‘코펜하겐 프라이드’가 열렸다. 3일 동안 열린 행사 중 나는 주말에 열린 마지막 퍼레이드에 다녀왔다. 프레데릭스베르(Frederiksberg) 시청 앞에서 출발해 센터시티에서 마무리되는 두 시간 동안의 이 긴 퍼레이드는 내게(개인적 취향에 기반해) 뉴욕에서 본 것보다 더 캐주얼하고 멋져 보였다. 같은 퀴어축제인 '뉴욕 프라이드' 경우, 사람들은 코스튬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쓰고 그 도시의 전경만큼이나 화려하며, 젊은이들이 전체 참가인원 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또한 축제가 벌어지는 곳은 뉴욕의 쇼핑 중심가 5th Ave근처로 장소마저도 휘향 찬란하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뉴욕 프라이드는 플래시(Flash)하고 코펜하겐 프라이드 페스티벌은 캐주얼하다고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캐주얼하다는 말 외에는 별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 건, 남녀노소가 모두 섞여있는 모습과 왠지 모르게 고즈넉한 코펜하겐 거리,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단체의 다양성 그리고 분위기 때문이었다. 




퍼레이드카 위에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각종 단체에서 참여 신청을 한 그룹들이 있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맹숭맹숭 서있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미스코리아 뺨치게 여기저기 손키스를 날리는 사람도 있고, 거리의 사람들과 원격 건배를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과 이미 만취한 사람, 무아지경으로 춤추는 사람들 등,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거리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무지개 코스튬으로 칭칭 휘감고 축제로 데리고 나온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공중으로 흩날리는 꽃가루, 화려한 복장의 사람들과 형형색색의 풍선들을 보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한껏 신이나 있었다. 이 그룹들은 성소수자들의 축제를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평화롭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었다. 또한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거리로 나와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를 마음껏 즐겼는데,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편견 없이 젊은 사람들의 퀴어축제에 한껏 녹아들어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가! 마지막으로 회사 측에서도 이 축제에 자금지원도 하면서 단체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온 직원들과 홍보도 하고 축제도 즐기러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코펜하겐 프라이드라는 슬로건에서 자신의 회사 이름을 붙여 ‘ooo 프라이드’가 적힌 깃발을 펄럭이고 다녔다. 코펜하겐의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좋은 홍보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대형 트럭에 올라가 춤추는 사람들, 각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종류 불문의 음악들이 축제에 흥을 더했다. 나도 한껏 흥이 올라 친구와 칼스버그 맥주를 마시며 가장 훌륭한 디제이가 탑승해 있는 버스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 마지막까지 퍼레이드를 즐겼다.  




Without prejudice, we are all equal.



코펜하겐 프라이드는 뭐랄까, 퀴어들의 축제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축제인 것 같았다. 성소수자들의 사회를 향한 울분 맺힌 외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프라이드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 모두가 동등함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평화로운 일요일의 유흥이었을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축복받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거리 위로 끊임없이 웃음이 흘러 넘치던, 실로 아름다운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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