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라이프 1# 커피
출생지인 미국을 제외하고 커피 문화가 유독 꽃을 피우는 나라들에서는 스타벅스를 많이 찾아볼 수 없는데, 이탈리아와 덴마크가 그런 경우였다. 스타벅스가 몇 블록을 두고 마주 보고 있을 정도로 많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내가 다섯 달 동안 본 스타벅스는 고작해야 세 군데 정도였다. 그만큼 자국의 카페와 커피 체인점이 발달했다는 얘기인데, 가장 인기가 좋은 커피 콜렉티브(Coffee Collective)와 커피 팩토리(Coffee Factory)를 비롯해 크고 작은 커피전문점들이 도시 곳곳에 즐비하다(원두를 직접 사서 집에서 내려마시는 사람들의 수 또한 많다고 한다).
커피에 문외한일 것 같은 내 룸메이트 조차도 무려 다섯 개의 커피 기구를 구비하고 있고 여러 종류의 원두를 요일별로 바꿔가며 맛과 향을 즐길 정도로 도가 텄다. 그런 친구에게서 정성껏 내려준 커피를 받아마시고는, '커피의 종주국은 이탈리아잖아'라는 말을 실수로 뱉었다가 온갖 타박을 들어야만 했다. 커피가 대체 뭐라고! 인터넷 통계를 보니 이 곳 북유럽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 또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많았다.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이렇게까지 발달한 이유가 뭘까?
첫째, 일조량이 적고 추운 기후 때문이 아닐까?
북유럽은 새벽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백야로 유명하지만, 일조량이 그 기간에만 몰빵(?)되어 있어 길게는 4월에서 9월, 짧게는 5월에서 8월까지를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밤이 훨씬 길다. 햇빛을 많이 못 본 사람의 몸이 얼마나 피로하고 기력이 떨어지며 잠 기운에 빠지는지 덴마크에서 처음 알았다(비타민 D의 중요성). 회사에서도 습관적으로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깨워야 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북유럽 사람들은 기후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커피 섭취를 늘리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몸에 윤활유를 뿌려주는 것처럼.
둘째, 일단 맛 자체가 굉장히 좋다.
가끔 고르고 골라 카페에 들어갔는데 커피맛이 이상하면 기분이 안 좋다. 묵은 원두 냄새가 난다거나, 탄내가 난다거나, 너무 묽거나 쓴 맛만 훅 치고 올라오는 경우가 그렇다. 아는 곳을 들어가지 않고서야 열에 다섯의 확률로 맛없는 카페를 만난다. 한두 푼도 아닌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무턱대고 들어갔던 카페들의 거의 대부분은 커피가 상당히 맛있었다. 공급되는 원두의 품질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거기에 근거 없는 추측을 하나 더하자면 물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에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커피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석회질과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물 때문이라고 대답을 해준 적이 있었다. 유럽 특유의 환경 때문에 덴마크의 물도 이탈리아처럼 석회질과 미네랄 함유량이 높은데(정말 놀라울 만큼) 아마도 같은 이유로 두 나라의 커피맛이 좋은 게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편안한 사람들과 달콤한 케이크와 차를 나누는 피카(Fika) 문화 때문일까?
덴마크의 휘게(Hygge) 문화를 즐기는 방법 중에는 편안한 사람들과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나 차를 마시고 달달한 페이스트리를 나눠먹으며 몸과 마음의 온기를 되찾는 시간을 갖는 방법이 있다(실제로 휘게를 설명하는 덴마크 책에도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피카라는 말은 커피타임을 일컫는 스웨덴어이자 북유럽 전체에서 공통된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회사에서나 카페 혹은 집에서 다과를 즐기는 시간임과 동시에 사람들과 휴식을 취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회적 행위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마신다는 것을 넘어 어떤 문화-정서적인 개념에 가깝구나 싶었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이토록 다양하다. 습관이거나 단순히 잠을 깨우기 위한 각성제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그 자체이기도 하며 피카처럼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다. 덴마크에 가게 된다면, 특히나 춥고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가게 된다면, 백열전구가 따스한 빛을 발하는 카페에 들어가 오후의 커피 브레이크를 즐겨보시길 바란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덴마크의 문화의 핵심을 경험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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