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라이프5# 감자 먹는 사람들
사람들이 덴마크에서 지내는 동안 뭘 먹고살았냐고 물으면, 5초 정도 고민 후의 내 대답은, '...... 감자?'다. 우리에게 친숙한 포테이토(potato)와는 달리 이름도 참 어렵다. 카토플(kartoffel).
우리에게 쌀이 주식이라면 덴마크 사람들에겐 감자가 그 몫을 하는 것 같다. 마트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감자 한 두 봉지씩(한 봉지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보다 조금 더 크다)을 카트에 담고 있고, 식당에서도 감자가 주인 메뉴들이 많고, 회사에서 주문하는 점심메뉴 구성에도 감자가 빠지는 적은 거의 없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끓는 물에 퐁당 담갔다가 꺼낸 삶은 감자를 시작으로, 계란을 함께 넣고 팬에 익혀낸 프리타타라던가, 소스에 버무려 빵 위에 올려먹는 샐러드 버전의 감자, 으깨서 곁들이는 감자, 얇게 저며서 구운 감자, 패스트푸드점처럼 가늘게 썰어 튀김 감자 등 내 평생에 볼 감자요리를 여기서 다 본 것만 같다. 물론 맛있는 음식들이긴 하지만 구황작물계의 양대산맥 중 감자보다는 고구 마파에 가까운 내겐 그다지 달가운 식사가 아니었다. 특히 회사에서는 메뉴가 요일별로 바뀜에도 불구하고 변주된 형태로 매일같이 모습을 드러내는 감자에 나는 점점 더 물려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에는 '우와! 라자냐다!' 하고 신나서 한 주걱 뜨는데, 치즈 이불 아래 얍삽하게 겹겹이 쌓인 두툼한 감자들을 보고선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다(*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저는 편식쟁이가 아닙니다. 잡식입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고흐가 덴마크인이었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이들은 매일같이 감자를 섭취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하고 많은 탄수화물 중 왜 이렇게 감자를 많이 먹는 걸까?
감자는 원래 남아메리카에서 재배되었고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 대륙에 소개되기 시작, 남쪽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전파되었다. 초기에는 그 어여쁘지 못한 생김새나 맛 때문에 크게 환영받지 못했으나 영국에서 산업혁명 이후 식량난을 해결할 값싼 영양공급원이었기에 정부의 감자 소비 독려와 더불어 점점 더 많은 레시피로 대중의 식생활 속에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매 해 73kg의 감자를 섭취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 중 덴마크는 감자 소비량이 특출 나게 많은 나라는 아니었다(최대 소비국은 아일랜드). 이 곳에서 몇 달 동안의 감자 위주 식생활을 통해 전보다 감자를 많이 섭취했지만 그래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 쌀밥을 먹어야 마음이 든든해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자매품: 덴마크인들의 당근 사랑
이들은 감자 못지않게 당근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스낵으로 당근을 씹어먹는 사람이 많고, 회사 주방에서는 과일로 분류되어 바구니 속에 과일인 척 숨어있는가 하면, 채로 다져진 당근을 접시 위에 두툼하게 쌓아놓고 먹는 사람도 있고, 당근을 걸러낼 수 없도록 잔뜩 다져 넣어 만든 요리 같은 것 도 있었다. (편식쟁이는 아니지만)‘당근송’을 '당근 싫어 송'으로 바꿔 부를 정도로 싫어하던 나로서는 정말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감자와 당근… 이 곳에 오래도록 살게 된다면 이런 나도 그들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