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라이프6# 사건사고
우리가 보통 덴마크에 대해 접하는 뉴스들은 온통 꽃밭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완벽한 복지국가', '가장 청렴한 정부', '치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안전한 나라'와 같은 헤드라인들. 칼을 소지한 강도와 총기를 가지고 벌어지는 사건 소식들이 날마다 쏟아지는 미국에서 지내던 나는(다니던 학교가 위치한 필라델피아는 미국 10대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늘 꼽혀왔다), 덴마크로 떠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이제 더는 밤길을 걸으며 주변의 무서운 사람들을 보고 어깨가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하며 걷지 않아도 되겠구나. '나는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로 떠난다 이 미국 놈들아~!'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내 콧노래는 푸슉~ 소리를 내며 곧 꺼지고 만다. 내가 코펜하겐에서 지내던 2017년의 여름, 코펜하겐에서는 여러 차례 총기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그 총격들은 내가 집을 얻은 뇌 어브로(Nørrebro)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리포트되어 더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다들 만날 때마다 그 얘기만 해댔고 행여 나와 내 가족, 지인들이 피해를 입을까 하는 걱정들이 끊이질 않았다.
미국에서 지낼 때에는 워낙 빈번하게 접했던 뉴스라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이상 크게 패닉을 겪거나 하진 않았는데(사건사고 뉴스를 접하는 빈도가 너무 높다 보니 뇌가 둔감해지는 현상인데, 절대로 좋지 않다. 반성을 해본다), 이 곳에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니, 여기는 행복과 안전과 복지와 휘게의 덴마크가 아니던가? 이 사건은 덴마크 국민 모두에게도 생소하면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덴마크어 뉴스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주워들은 것들을 종합한 거라 과장되었거나 다소 정보가 잘못되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유인 즉 이러했다. 코펜하겐에는 두, 세 개의 갱단들이 있는데 그중 한 조직의 두목이 8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를 하게 되어 갱단들의 세력에 큰 격변이 일어났고, 보스의 복귀를 등에 업고(출소기념 파티?) 그 조직이 다른 나머지 두 조직을 평정하겠다는 야심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누아르 영화에나 나올 법 한 이야기다. 리포트된 사건 중 몇 개는 우리 집과 불과 몇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 코펜하겐에서 평생을 살았던 내 룸메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실제로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친구는 총성이 오간 지 몇 분 후에 그 길을 지나다가 사색이 되어 오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여자들과 아이들보다는 그룹으로 모여있는, 즉 다른 갱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기에(머리도 묶지 않고 일부러 밝은 색의 옷을 골라 입고 다녔다) 조금 걱정을 덜 수는 있었다. 반면 남자들은 이 지역을 지날 때에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나는 룸메와 그 친구에게 절대 몰려다니지 말고 가능하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뭘 한다한들, 풍성한 턱수염과 196센티미터의 키로 어떻게 여자임을 어필할 수 있단 말인가(덴마크 라이프 4#편 참조)! 그저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다행히 그 뒤로 경찰들이 온 동네방네 쫙 깔려 상시 돌아다닌 결과, 몇 주가 지난 후엔 더 이상의 총격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총기사건보다 코펜하겐에서의 그 한 달이 위치상으로나 빈도상으로 훨씬 위험했음에도 한국에서는 덴마크 뉴스가 잘 나오지 않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없었다(한국에서 치안을 걱정하기에 그네들은 너무 멀고도 관심 밖의 나라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일화만 빼고 말이다.
나는 평소 출퇴근 시 가장 빠르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는 대로변으로 다닌다. 그러던 중 하루는 새로운 퇴근길 루트를 찾아 나서볼까 하는 마음으로(명줄을 당기는 쓸데없는 개척정신!) 구불구불 골목길을 따라 내키는 대로 자전거를 몰고 가게 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길에는 조명이 거의 없이 어둑어둑했으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좁은 길의 양 옆으로 삼삼오오 모여 듬성듬성 늘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합치면 족히 삼, 사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갱단들인가? 영화에서나 봤지 눈 앞에서 실제로 조폭 아저씨들을 본 건 처음이었기에 나는 현실감 없는 기분, 그러나 몸은 온통 겁에 질려 다소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페달을 굴리며 그 길을 지나왔다. 너무 빨리 달아나는 제스처를 취해도 안될 것 같고 거기에 멈춰서는 건 더더욱 안될 것 같아 적당하고 일관된 속도를 유지했고, 얼굴은 정면을 향했지만 눈은 파리처럼 양 옆으로 쏠려있었다. 그 길에 서있던 갱단 중 한 명이 날 유심히 봤다면 조금 웃겼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큰길로 나와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난 뒤 다리가 풀렸다. 아무에게나 해코지할 생각이 없었을 테지만(정말?) 내게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범죄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비교적 행복하고 평화로운 나라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총기 소지를 금지하자는 법안은 국회에서 번번이 엎어지고, 합법화가 되어있지 않은 나라에서도 그것들은 어디에선가 흘러들어와 사람들의 편안한 보금자리를 위협한다. 끊임없는 무력갈등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저 암막 뒤의 종자들과 그 위에서 신나게 날뛰는 것들의 합작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소시민인 나는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희생자들을 위해 작은 애도를 표할 뿐이다.
*코펜하겐에서 덴마크어를 못 읽어 사건사고 뉴스를 알 길이 없던 내게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웹사이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시거나 덴마크에서 살게 되실 분들이라면 꼭 들어가 보세요. 유익한 정보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