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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오이 씨

1606

그날도 매캐한 연기가 질펀한 고깃집에서 조용히 오이의 씨를 걷어 내고 있었다. 삼겹살이 익어가든지 말든지, 적당히 4 등분된 오이를 들고 숟가락으로 슬로 모션처럼 긁어 내려가는 그의 표정은 유난을 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왼쪽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기묘한 대칭점으로 오른쪽 눈썹산은 슬며시 올라가며 정말로 오이의 몸통만 먹고 싶은 천진한 욕구가 묻어났다. 하나의 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견뎌낸 오이는 매우 먹음직스러워서 빨간 고추장에 푹 찍혀 그의 치아에 닿아 잘릴 때면 흡사 대게의 통통한 다리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야무지게 오이를 씹어대고 그다음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같은 과정을 반복했고 추가 주문은 없었다. 사실 혼자서 맥주를 졸졸 따르며 마시다가 유리컵 너머로 우연히 발견한 그의 취향이었다. ‘나는 있잖아, 오이 씨가 싫어’ 같은 나 좀 봐달라는 식의 애 같은 투정이 아니라 무척 자연스러웠고, 저도 모르게 묵묵히 바라보게 되는 낯선 끌림 같은 것이 있었다. 그가 오이를 즐길 때 나는 맥주를 따랐고, 같은 타이밍에 고기를 입에 넣었다. 한 달 후쯤인가 비슷한 자리가 생겼다. 달포가 지나는 동안 아예 오이를 떠올려 본 적도 없었지만, 그 선배를 보자 단번에 그의 행동과 함께 오이의 씨가 터지며 탄산처럼 풍기는 그 향기가 기억이 났다. 


역시나 누가 보든지 말든지 오이를 바르기 시작했다. 나도 맥주를 따라 마시는 척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심정까지는 아니었고, 그는 모르는 그와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이었다. 투명한 씨가 터진다. 청량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질척한 씨가 없는 오이의 속살은 무슨 맛일까. 멜론향이 날지도 몰라. 나도 한 번 해볼까. 생각보다 별로면 어쩌지. 이런 생각과 결심 사이 맥주 한 잔을 다 마셔버렸다. 에둘러 잔을 채우고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벌써 씨를 다 바르고 고추장에 오이의 머리를 담갔다가 빼는데, 그 날 따라 오이의 물이 좋았는지 그 표면의 수분감 때문에 잘 묻어나지 않는 듯했다. 재차 시도하는 그때 누군가가 앙칼지게 훼방을 놓았다. “너는 오이의 씨를 왜 발라 먹는 거야?”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시선이 날것의 오이 몸통에 집중되었다. “어머, 그르네. 언제 다 발랐대.”, “오이에 씨가 없으면 무슨 맛으로 오이를 먹지?”, “참외도 아니고 왜 저렇게 먹는 거야.” 등의 시답잖은 참견들이 오고 갔고, 그는 멋쩍어하며 오이를 고추장에 한 번 더 담갔다. 처음 오지랖의 물꼬를 튼 누군가가 다시 언질 했다. “그렇게 먹을 거면 먹지 마.” 그러고는 분홍색 피가 뭉근히 올라온 삼겹살 조각을 휙 뒤집고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던 그 찰나를. 고추장이 적당히 묻은 오이를 입에 물었다. 마치 나무토막을 씹는 듯한 질감으로 턱을 두어 번 움직이고는 남은 것은 마저 욱여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오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묵묵히 고기를 먹고 소주를 연이어 세 잔 마셨다. 


소위 ‘꼰대’라는 것은 타이밍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에 굳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두 번이나 무례하게 참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효율이나 다른 목적이 있다기보다 그저 ‘나는 너보다 위에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라는 유치한 억누름이다. 내 인생과 당신의 그것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삶인데, 그것에 대해 자신의 방식이 옳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 꼰대의 핵심이다. 오이를 어떻게 먹든 무슨 상관인가. 새파란 오이로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씨 없는 게 맛있다며 억지로 권유한 것도 아닐진대. 분명 눈살이 찌푸려지는 사고방식인 동시에 지양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매우 쉽게 목격하며, 심지어 스스로 꼰대임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테면 결혼에 관한 것이다. 연애는 왜 하지 않는 것이냐,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 결혼을 왜 할 생각이 없는 것이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 사람이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 철이 난다, 애가 있어야 어른이 되는 것이다 등의 마치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레퍼토리처럼 늘 같은 형상으로 펼쳐진다. 그런 어른이라면 사양하겠다. 그냥 철없는 사내로 늙어 죽겠다. 그렇지만 나 또한 단언하건대 상당한 누군가들에게 꼰대이고도 남을 것이 자명하다. 적어도 인지하는 축에 속하니 최악은 아니라고 자위할 뿐. 


그에게 씨가 없는 오이는 참으로 맛난 음식일 뿐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오이의 씨를 걷어내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비밀스러운 취향을 이행했을 뿐이다. 남들처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 번째 술자리에서 만난 그는 오이가 담긴 야채 모둠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다. 나는 또 맥주를 마시는 척하며 이번엔 그가 어떤 행위를 은밀히 진행할 것인지 곁눈질로 관찰 중이었다. 그때 그 오지랖을 펼쳤던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쟤는 왜 자작을 하고 있냐. 재수 없게." 맥주의 맛이 오줌처럼 느껴지는 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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