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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매미가 죽었다

1608

이 맘 때쯤이면, 그러니까 여름의 한가운데에 다다르면 '매앰매앰' 울던 그들이 정말이지 '빼액 빼액' 울어재낀다.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 절정은 지금 이 순간이라고 무척이나 알리고 싶은 것인가. 동이 틀 무렵부터 시작한 외침은 땅이 데워질수록 커진다. 오후 두어 시가 되면 거의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숨도 안 쉬고 소리를 지른다. 여름이 곧 저문다는 경보음 같다. '2주 후면 여름이 곧 끝난단 말이야! 빼애애액!' 


7년의 세월을 굼벵이인 채로 축축한 흙만 파먹으며 살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뭇거뭇한 흙무더기와 거친 나무뿌리뿐이고 그것이 그들이 알던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다. 일곱 해만 넘기면 딱딱하게 한 반 굳었다가 커다랗고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우아한 개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전설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땅 위로 올라가서 기다란 주둥이를 매끄러운 나무에 박고 달콤함 수액을 끝도 없이 빨아들인다고 하는 천국 같은 이야기를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누구도 다신 땅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니 증명할 동료도 없다. 부활 따윈 집어치우고 그저 이렇게 땅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살이나 찌우자, 괜히 지표면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엄한 멧비둘기의 먹이나 되지 말자고 그들끼리 쑥덕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엔 땅 위에 대한 갈망이 부적처럼 서려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수험생 때 발병했다고 읽었다. 병원에서 나올 수 없어 감독관을 병실 안에 대동한 채 시험을 치렀다고 들었다. 또 몇 년이 지나 자신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의대 진학의 꿈을 품고 다시 한번 도전했다고 했다(공부는 꽤 했던 모양이었다). 여느 방송의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이 투병기는 그녀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다. 질병으로 골수이식 후 부작용이 폐로 발현되어 기관삽관을 거쳐 절개관에 이르고, ECMO(세포막산소공급장치)까지 끼고 연명하게 된 상태임에도 거울을 보고 입술을 쭉 내밀고 셀피를 찍어대던 그녀를 목격하곤, 저 정도 캐릭터면 분명 그녀의 SNS는 현재 진행형일 것이라 추측되었다. #ECMO, #아프지만 괜찮아, #중환자실 같은 태그를 단 채 말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환자에 대한 평판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모친은 간호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고, 그녀의 동생은 꽤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급기야 남자간호사가 케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소변은 여자 간호사가 봐주는 조건으로 그녀를 맡았다. 꼭 찾아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SNS를 운영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분명 전체 공개일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애증의 구글링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SNS는 찾을 수 없었지만 다른 발자국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병원보 같은 곳에도 투고를 하고 보도 매체에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흔적을 그녀가 고집스럽게 볼펜을 잡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갔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그리고 기뻤다.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땅 속 매미처럼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었구나. 날개를 달고 부활하는 매미처럼 모든 병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길 어쩌면 저렇게 온 힘을 바쳐 바랄 수 있을지 새삼 용감해 보이기까지 했다. 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하얗고 끝도 없이 까다롭기만 한 중환으로 여겨왔던 그녀는 조금 숨쉬기 힘들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일뿐이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운은 좋았지만 운명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입원한 지 오래 걸리지 않아 괜찮은 폐를 이식받을 수 있었지만, 수술을 시작하고서야 그녀의 몸은 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음을 모든 의료진이 통감했다고 한다. 생명줄만 가느다랗게 유지한 채 거의 억지로 중환자실로 옮기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이토록 슬픈 운명을 알렸다. 그녀가 십 년 넘게 죽음의 문턱을 오가느라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항상 했던 모양인지 의외로 담담했다. 불길한 예상대로 며칠 후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수혈을 했어도 처음 입원했을 때처럼 하얬다고 한다. 철들 때부터 병원 안에서 살아왔던 그녀는 마지막 또한 투명한 병실에서 마침표를 찍은 셈이었다. 


발 끝에서 무언가 꿈틀댄다. 먹이를 운송하는 개미들이었다. 그들이 탐욕스럽게 이고 나르는 것은 다름 아닌 매미의 사체였다. 날개가 하나밖에 없었고 다리도 몇 개 뜯겼으며 주둥이도 이미 꺾여있었다. 다른 것들은 아직도 울음소리가 한창인데 이것만은 조금 빨리 명을 달리하고 개미들의 주전부리가 되려는 중이었다. 손을 뻗어 매미를 집었다. 바삭거리고 텅 빈 느낌의 그것. 끝까지 달려있는 개미들을 마저 털어내고 잠시 응시했다. 넌지시 말을 걸었다. 7년 동안 깝깝한 지하에서 이제 막 기어 나와 이토록 눈부신 세상에서 며칠을 보내고 이렇게 눈을 감기에 너는 안타깝지 않았니. 독한 운명을 탓하지는 않았니. 매미가 답했다. 괜찮아요. 나는 다른 친구들만큼, 아니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인생의 절정이었어요. 부디 압축된 삶이라 기억해주세요. 나는 괜찮아요. 


마침 가지가 멋지게 뻗은 벚나무가 근처에 있었다. Y자로 자란 줄기 사이에 매미를 앉혔다. 무성한 나뭇잎이 만들어 낸 그늘이 있어 시원할 것 같았다. 여름은 아직 새파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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