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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Ready, Set, Go

1805

수고하셨습니다.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낯을 익히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섬세하면서 육중한 기기들 사이에서 땀 내느라 힘들었을 겁니다. 그야말로 피가 튀고 가래가 날아다니는 병동에서 해야 할 일들이 백만 개쯤 되는 것 같았는데 여덟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다 해치워놓은 선배 간호사들을 보며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을 겁니다. 분명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을 직접 해보려니 손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했던 시간이었겠지요. 반드시 외워야 했던 것들인데 당장 기억이 나지 않을 거예요. 어제 봤던 환자인데 오늘 또 새롭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실 중환자실이 좀 그래요. 그래서 ‘중환자’라고 일컫는 거겠죠.


짝짝, 일단은 축하합니다. 수습기간이 끝났습니다. 스스로 일을 해야 할 때가 왔어요. 월급 받는 값어치를 해내야겠지요. 이제 앞으로 펼쳐질 시간은 아마도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약간의 단단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시스템과 분위기, 그리고 인력들이 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본인은 체감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입사 전 상황 따위 알 바 아니에요. 현재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병원의 과거가 무슨 상관이랍니까. 그토록 두려워했던 ‘태움’이라는 저질 문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시점이지만 그래도 당신은 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다른 간호사가 아닌, ‘병원’에 의해, ‘환자’에 의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의해 말이죠.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행위를 무조건적으로 ‘태움’이라 착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팩트’ 일뿐이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태움의 기준입니다. 부디 전자에 의해 상처 받지 말았으면 합니다. 후자는 쓰레기 같은 악습일 뿐이고요. 되풀이되기가 참 쉽고 전염도 잘 됩니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것에 휘둘리지 맙시다. 우리 상쾌하게 일하도록 해요.


당신이 겪을, 혹은 이미 겪고 있는 과정은 현재 당신을 제외한 ‘우리’에게는 진작에 지나간 시간입니다. 우리도 견뎌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라고 따로 구분 지었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이건 당신이 독립을 하기 직전에 쓴 글이니까요. 내일 독립을 할 당신은 이제야 비로소 ‘우리’ 안에 속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여태 해왔던 것처럼 당신의 손을 꼭 잡고 힘껏 끌고 갈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간호사, 강 건너 불구경하는 간호사, 큰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유난을 떨며 불 같이 화를 내는 간호사 등 정말 많은 부류가 있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친절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볍게 접으십시오. 이곳은 냉정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도 날려버리십시오. 이곳은 유치원이 아닙니다. 당신은 더 이상 학생도 아닙니다. 오롯이 성인입니다. 뭐든 선택할 수 있는 나이이고 그럴 자격과 의무가 있습니다.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집이나 강짜를 부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 안에 간직한 나름대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잃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병원이라는 시스템이 최대한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기는 하겠지만, 순수하게 당신을 챙기는 것은 유엠도 아니고 프리셉터도 아니며 동기도 아닌, 당신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강해져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병원은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절차상 혹은 전례 상 존재했던 간호 외의 업무는 전체적으로 없애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만, 불행히도 환자 자체와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간호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간호사입니다. 당당하게 마주 보십시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지는 않습니다(업무에 치여 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환자가 훨씬 힘듭니다). 그 상황은 계속 반복될 겁니다. 아픈 사람이 없지 않은 이상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대신 나름대로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저 같은 경우 중환자실 간호사로서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성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당장은 대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반드시 갖추십시오. 범죄가 아닌 이상 뭐든 좋습니다. 풀 수만 있으면 됩니다.


작은 기대는 하되, 그렇지 않더라도 되도록 낙담은 하지 마십시오. 연애와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혼자 살아가야 합니다. 굳이 간호학과에 지원하여 1000시간에 가까운 실습시간을 견디고 국시를 치르고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선택이었고, 누구도 등 떠밀지 않았어요. 그토록 싫었다면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그만 두면 됩니다. 당신이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저 안 맞는 옷일 뿐이지요. 다른 스타일의 간지 나는 옷을 입으면 그만입니다. 대신 한 가지 당부할 것은 그 선택에 적어도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싫은 것이 ‘당장’인지 ‘중환자실’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최소 조건이지요. 다만 불합리한 것은 참지 말았으면 합니다. 환자에 대한 인내는 미덕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악덕입니다. 그것 말고도 우리는 견뎌야 할 것이 차고 넘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뭔 X소리랍니까. 아프면 환자죠. 그런 시대는 애초에 지나갔습니다. 그런 통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병원에서의 성장통으로도 우리는 충분하니까요.


두 달 동안 아마도 프리셉터는 모든 것을 알려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완벽한 사람은 없죠. 나름대로 최대한 흡수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큰 가지가 세워집니다. 이제 튼실한 잔가지와 초록빛이 나는 새잎을 틔울 일이 남았습니다. 어떤 속도와 길이, 밀도로 뻗는가 하는 것은 본인의 기질과 역량에 달렸습니다. 뒤쳐진다고 우울해하지도, 뛰어나다고 우쭐해하지 마십시오. 일 년 정도 지나면 동기들은 다들 비슷해집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긴 것 같나요. 우리는 인스턴트식품이 아닙니다. 그렇게 쉬운 직업이었다면 누구나 하고 있겠지요. 스스로에 대해 인고와 숙성의 시간이 지나면 그때 제대로 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동질감이라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중환자실의 간호사’라는 공통분모는 주로 그때 툭 하고 생성되곤 합니다. 그 전의 감정은 본인을 속이기 위한 합리화 같은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백업을 하고 있겠습니다. 그 날 ‘우리’ 맥주 한 잔 합시다. 그간 잔소리

듣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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