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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Aug 14. 2017

Day 46. 못돼 먹은 여행자


오늘은 아주 혼란스러운 일이 있었다.

소피아행 버스를 타기 위해 데살로니키로 돌아가는 길,

할키디키의 작은 도시 아르네아(Arnea)에 잠시 들렸을 때의 일이다.


마을을 둘러본 후 잠시 쉴 겸 카페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한 노인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네 말을 건넸다.


"자네들 혹시 영어를 할 줄 아는가?"

"네 조금은 할 줄 알아요."

"음... 사실은 오늘 런던에 있는 딸애의 축일이야."

"와!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노인분은 딸애의 축일 이야기를 하고는 비닐봉지에 있는 박스를 주섬주섬 열며 말했다.


"그래서 축하하려고 초콜릿을 좀 샀어 자네들도 하나씩 들게나."

"어머 감사해요."


순간 노인분이 건네는 초콜릿을 받으려는 누라를 막으며 내가 말했다.


"아니요. 축일은 축하드리지만 초콜릿은 괜찮아요."

"아니야. 하나씩 들어도 괜찮아."

"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내 말을 들은 노인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지...?"

"미안해요. 사실 어떤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나는 단호하게 둘러댔고, 그는 급하게 박스를 닫더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그 노인분이 초콜릿을 받게 만든 후 돈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 유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노인분은 차를 몰고 갔다.

보통은 사기를 시도하다 실패하면 쿨하게 다음 타깃을 노리는데...

그리고 여기는 관광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할키디키의 작은 마을이다.

그렇다면 혹시?


"왜 그래. 저분 방금 이 카페에서 초콜릿 사서 나오신 분인데."

"뭐라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야?"


누라의 말에 확실해졌다. 나는 지금 한 노인의 호의를 무시한 것이다.

그 초콜릿은 정말 그리스 촌에 사는 한 노인이 런던에 있을 딸의 축일을 축하하려 산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매우 마음이 불편했다.


행복하기만 해야 할 그의 하루를 망친 게 아닐까.

힘들게 용기 내서 한 행동을 우리가 매몰차게 거절한 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누라는 정말 사기였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라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쉽게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까의 행동이 후회된 나는 카페의 주인을 찾아갔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마을 주민들의 얼굴 정도는 서로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사과의 말을 전해달라고 하려고... 하지만 그 카페의 직원 누구도 그 노인을 알지 못했다.

하긴 차를 끌고 왔다면 마을 외각 어딘가에 사는 분 일수도 있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외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고 들어서?

노인분의 옷이 허름해서?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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