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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포동 술쟁이 Jul 11. 2017

프롤로그 000-03 지금을 정리한다는 것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단기여행을 떠나는 것도 환전부터 여행지에 대한 정보까지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번엔 장기여행이다. 단기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피로보다 10배는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설렘은 100배도 더 넘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은 대략 2달 이상. 게으른 성격 탓에 본격적인 준비는 1달 아니 2주 전부터 시작되었다. 집을 내놓는다거나 하는 큼지막한 일들은 진작에 끝냈지만 디테일한 일들이 많아 남았다. 현지에서 자금을 굴릴 카드를 발급받는다거나 공과금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짐을 꾸리는 것들 말이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자잘한 일들을 최대한 미룬 덕분에 출발 2주 전은 전쟁과 같았다. 매일 은행을 다니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현지에서도 지금 입는 옷을 그대로 입어야 하기 때문에 출발 전날 가지고 갈 옷들을 세탁기에 돌렸고 그 덕분에 출발 4시간 전에 캐리어문을 닫을 수 있었다. 게다가 비행기는 저렴한 걸 찾겠다고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끊어서 거진 잠도 못 자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여기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준비를 하는 기간이 길었음에도 빨리 준비를 끝내지 못한 건 게으른 성격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생활을 심적으로 정리하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영 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몇 년 유학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살던 곳을 이렇게 오래 떠나 있던 적이 없어서인지 온갖 복잡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갔었다. 그렇게 난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남은 시간을 지인과 가족들을 만나고 TV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면서 떠나는 준비를 하기보단 일상적인 한국에서의 삶을 사는데 치중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평소에 멀쩡하던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고 심지어 출국 2일 전엔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도 받았다. 결과는 디스크가 아주 조금 있는 것 말고는 지극히 건강하다는 소식이 다였다. 아무래도 출발 전에 몸이 많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이러고 나니 해외에서 호스텔을 하고 싶다느니 이민을 가고 싶다느니 떠들어댄 이전의 내 모습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건강하다는 검사 결과를 받자마자 미치도록 출국시간이 기다려졌다. 지금까지 준비하면서 느낀 설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실컷 여행을 즐기다 오라는 말처럼 들렸나 보다.


여행을 마칠 무렵 어떠한 내가 되어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일생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을 통해 여행의 끝에서 난 새로운 나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나러 여행길에 오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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