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을 하던 도중 맥주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만난 동키맥주 때문이었다. 동키맥주는 오직 산토리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다. 양조장도 그리 크지 않은지라 산토리니 내에 보급되는 양도 매우 적다. 이런 희귀한 맥주를 접하고 보니 앞으로 유럽에서 마시게 될 다양한 맥주를 단순히 갈증해소용으로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만을 기록한 맥주 기행록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지극히 나만의 생각만 100% 반영된 맥주도감을
이건 앞으로 여행하면서 내가 맛보고 느낀 맥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벨기에는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독일과 체코 같은 맥주 강국 사이에 끼여있어서 그런지 맥주가 참 다양하다. 게다가 독일의 맥주 순수령과 같은 규제가 없기에 그 종류는 상상을 초월한다. 맥주 브랜드만 500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 다양성을 짐작하기 어렵다. 벨기에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대하듯 맥주를 섬세하게 즐긴다. 계절에 따라 요리에 따라 마시는 맥주가 다를 정도다. 개인적으로 평소엔 벨기에 맥주는 조잡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밀맥주는 시큼하기만 하고 에일은 독하고 쓰기만 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내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려주었다.
일반적으로 체코의 레스토랑의 경우 한 가지 브랜드의 맥주만 취급하는 것이 관례이다. 하지만 벨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판매한다. 그런 만큼 이들은 맥주마다의 전용잔을 구비하고 있다. 만약 전용잔을 가지고 있지 않는 곳을 갔다면 빨리 나오는 게 좋다.
때문에 이번 벨기에에선 유명한 브랜드보단 맥주의 종류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브랜드만 찾아다니다간 벨기에 맥주를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람빅은 야생 효모로 만드는 천연 맥주이다. 그래서 가장 오리지널 맥주에 가깝다고 한다. 아무래도 효모를 계발하지 못하는 먼 과거에는 이렇게 야생 효모를 사용했을 것이니 말이다. 람빅의 특징은 효모 말고도 홉에서도 찾을 수 있다. 람빅은 오래 묵은 홉을 사용하여 홉의 향과 쓴맛이 적게 느껴진다. 들어가는 재료에 상관없이 이렇게 야생 효모로 만드는 맥주를 통틀어 '람빅'이라고 이해하면 편하겠다.
- 괴즈(Gueuze / Geuze) : 미숙성 람빅과 숙성된 람빅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맥주다.
- 크릭(Kriek) : 흔히들 알고 있는 체리 맥주
- 프람브즈(Framboise) : 흔히들 알고 있는 라즈베리 맥주
Mort Subite Lambic Blanche / White Mort Subite (오른쪽)
양조장 : Kobbegem,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5.5%
타 입 : Lambic Style - Witbier
방 식 : Draught
밀맥주의 편견을 사라지게 만들어준 맥주. 한국에서 먹을 땐 밀맥주 특유의 시큼한 맛이 싫었는데, 이 맥주는 아주 벨런스도 좋고 신맛이 맥주 맛을 거슬리게 하지 않아서 좋았다.
Mort Subite Kriek Lambic Tradition (왼쪽)
양조장 : Kobbegem,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4.5%
타 입 : Lambic Style - Fruit
방 식 : Draught, Bottle
어찌 보면 람빅의 첫 경험. 달달한 맛으로 먹기 좋은 맥주. 술을 싫어하는 누라도 즐겨마신 맥주다.
플란다스(Flanders)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로 그 지역에서 나는 홉만을 사용한다. 과일과 산미가 강한 맛이 특징인 맥주다.
Ichtegems Grand Cru
양조장 : Ichtegem,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6.5%
타 입 : Sour Red/Brown
방 식 : Bottle
탄산이 강한 게 가장 먼저 느껴졌다. 체리인지 크랜베리 같은 과일맛이 강하게 난다. 요즘엔 설탕을 많이 탄다는 말을 듣고 마셔서 그런지 당도도 상당했다.
트라피스트 Trappist
벨기에 수도원에서 직접 제조되는 맥주는 트라피스트뿐이다. 이는 몰트를 물에 몇 번 우렸는지에 따라 싱글(Single/Small), 더블(Double/Dubbel), 트리플(Triple/Trippel)로 나뉜다. 트리플이 가장 독하고 싱글이 가장 약하다. 하지만 난 트라피스트는 못 마셔봤다. 아쉬움에 공부도 할 겸 각 맥주의 특징만 모아서 정리해 보았다.
- 쉬매이 Chimay
노트르담(Notre Dame)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는 쉬 메이는 트라피스트 중 가장 유명하다. 수도원 맥주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상업화를 한 곳이라고 한다. 레드(Red), 화이트(White), 블루(Blue)로 나뉜다. 식전에 마시기 좋은 맥주이며 신맛이 약간 느껴지는 맥주다.
- 오르발 Orval
병 라벨에 그려진 금반지를 문 송어 그림이 눈에 띈다. 호수 근처에서 금반지를 잃어버린 공작부인이 하느님께 반지를 찾아주면 수도원을 짓겠다고 기도를 하자 송어가 금반지를 물고 나타났다고 한다고는 한다. 중요한 건 아니고, 후추 맛이 강한 이 맥주도 식전 주로 주로 쓰인다고 한다.
- 베스트 말레 Westmalle
비교적 유명한 편인 트라피스트 중 하나다. 오렌지 같은 과일향이 강하며 신선한 홉의 향이 두드러진다. 숙면에도 좋다고 하는데... 술을 마시면 잠은 잘 오지만 숙면은 방해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있으니 난 믿지 않기로 하겠다. 감기 걸렸을 때 고춧가루 푼 소주 마시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 로쉐 포르트 Rochefort
색이 진하고 달달한 게 특징인 맥주다.
애비 Abbey
수도원 양조방식에 따라 일반 맥주회사가 만든 수도원 맥주라고 보면 편하다. 맥주를 설명해준 직원의 말을 직역하면, 숭고한(noble) 에일이지만 세속적(secular)인 양조사가 만드는 맥주라고 했다.
St. Bernardus Pater 6(왼쪽)
양조장 : Watou,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6.7%
타 입 : Abbey Dubbel
방 식 : Bottle
단맛이 있지만 지배적이진 않으며 피니쉬가 드라이한 맥주.
Ambiorix Bruin(오른쪽)
양조장 : Ninove,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8.0%
타 입 : Abbey Dubbel
방 식 : Bottle
탄산과의 조화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은근히 부족한 바디감 때문에 마지막에 살짝 아쉬웠다.
St. Bernardus Tripel(왼쪽)
양조장 : Watou,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8.0%
타 입 : Abbey Tripel
방 식 : Bottle
달콤하고 시큼하고 쓴맛이 함께 올라오지만 그 사이에 질서가 느껴지는 재미있는 맥주.
Abbaye des Rocs Nounnette(중간)
양조장 : Montignies-sur-Roc,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7.5%
타 입 : Abbey Tripel
방 식 : Bottle
마지막에 쓴 홉의 향이 강하게 기억남은 맥주.
Fort Lapin 8 Tripel(오른쪽)
양조장 : Brugge, Belgium
내평점 : 2/5
도 수 : 8.0%
타 입 : Abbey Tripel
방 식 : Bottle
달다는 느낌을 받았다. 홉의 향은 강하나 쓴맛은 안남. 전반적인 벨런스가 좋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맥주.
Westmalle Tripel
양조장 : Malle,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8.0%
타 입 : Abbey Tripel
방 식 : Draught
'가장 맛있는 맥주가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서버가 자신 있게 가지고 온 맥주. 애비 트리블(Abbey Tripel) 중 가장 맛있게 먹었다. 묵직한 바디감이 더 마음에 들었던 맥주.
Leffe Tripel
양조장 : Hoegaarden,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8.5%
타 입 : Abbey Tripel
방 식 : Draught
맥주를 설명해준 직원의 표현을 빌려 수도원 맥주 중 가장 세속적인 애비 맥주라는 레페(Leffe).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맥주로 과일향과 초콜릿 맛이 느껴진다. 감 맛도 난다는데... 감 맛까진 잘 모르겠다.
벨기에는 밀 맥주를 화이트 비어라고 부른다. Wheat와 White가 발음이 비슷해서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니 그냥 넘어갔다. 난 오히려 밀맥주 특유의 진한 흰색 거품 때문에 화이트 비어라고 한다는 의견에 한표 던진다. 오렌지 껍질이 들어가 살짝 신맛이 나는 화이트 비어는 차게 마시는 게 좋으며 특히 치즈나 홍합요리와 잘 어울린다. 진짜로 잘 어울린다.
Hoegaarden
양조장 : Hoegaarden,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4.9%
타 입 : Witbier
방 식 : Bottle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벨기에 맥주가 바로 호가든일 것이다. 한 때 벨기에에는 골든 라거에 세력을 밀려 밀맥주 양조장이 문을 닫은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밀맥주를 그리워했고 밀맥주를 원했다. 때문에 밀 맥주 양조 경험이 있었던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가 만든 것이 이 호가든이다. 이후 화재가 일어나면서 대형 맥주 회사인 인터브루(Interbrew)의 투자를 받게 되고 결국 인터브루의 소유가 되게 된다. 아직까지도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밀 맥주는 셀리스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호가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긴 했으나 다른 좋은 화이트 비어(White Beer)를 경험해서 인지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었다.
St. Bernardus Blanche (Witbier)
양조장 : Watou,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5.5%
타 입 : Witbier
방 식 : Bottle
맛있다. 난 이제 밀맥주 좋아할 것이다. 강한 홉의 향이 밀려와 쓴 맛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씁쓸한 맛이 적어서 좋았다.
Brugs Tarwebier
양조장 : Alken, Belgium
내평점 : 5/5
도 수 : 4.8%
타 입 : Witbier
방 식 : Draught
홍합요리를 먹으러 가서 화이트 비어(White Beer)를 시키면 열 집 중 아홉 곳은 이 맥주를 준다. 부드럽고 달달하고 거슬리지 않는 상큼함이 나는 맥주. 해산물 요리와 먹을 때 정말 최고인듯하다.
에일이면 에일이지 벨기에 에일은 뭐냐고 물었지만, 벨기에 전통 에일이 있다고 하여 카테고리에 추가했다. 벨기에 에일 중 스트롱 골든 에일은 보통 7~11도로 독하지만 필스너 같은 황금색 빛을 가지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De Ranke XX Bitter
양조장 : Dottignies,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6.0%
타 입 : Belgian Ale
방 식 : Bottle
홉의 쓴맛이 너무 강해 강하게 치고 나오지만 그것을 단맛이 바로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Duvel
양조장 : Breendonk-Puurs, Belgium
내평점 : 5/5
도 수 : 8.5%
타 입 : Belgian Storng Ale
방 식 : Bottle
어느 날 맥주 맛을 본 누군가가 '이것은 악마의 맛이다.'라고 해서 두블(Duvel)이라는데... 일단 넘어갔다. 두블(Duvel)은 아오이 사과 맛이 살짝 나면서 드라이하다. 더블은 맛이 강하지만 향긋한 느낌을 준다. 맛있었지만 벨기에에 와서 마셔보니 더 맛있었다. 독해서 많이 못 마시는 게 한스러운 맥주다. 벨기에 맥주 중 라벨에 악마와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맥주를 발견한다면 두블과 비슷한 맥주라고 보면 된다.
Saint-Monon au Miel
양조장 : Ambly, Belgium
내평점 : 2/5
도 수 : 8.0%
타 입 : Belgian Storng Ale
방 식 : Bottle
처음엔 고소한 맛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꾸릿꾸릿한 맛으로 느껴진 맥주.
세송은 여름을 뜻한다. 여름 맥주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최근 들어 인기가 다시 생기고 있는 맥주 중 하나라고 한다. 약초와 과일향이 강해 산미가 강하며 드라이한 게 특징이다. 세송이 만들어진 에노에서 농부들은 비교적 일이 적은 봄철에 맥주를 만들어 한참 바쁜 여름철에 차 대신 이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농부들이 마시는 맥주다 보니 예전엔 3~4% 정도로 약한 맥주였지만 오늘날에는 5~7%로 많이 상승했다. 또한 냉장기술의 발달로 여름에만 마시는 맥주의 의미도 많이 사라졌다. 세송의 양조법은 특유의 가볍고 향긋한 특징 때문에 현대 크래프트 양조에 자주 사용된다.
Géants Saison Voisin
양조장 : Irchonwelz, Belgium
내평점 : 3/5
도 수 : 5.0%
타 입 : Saison
방 식 : Bottle
산미가 강하게 나는 것이 자극적이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 마시면 좋을 것 같긴 하다.
크왁 맥주의 창시자인 크왁은 여관 주인이었다. 크왁은 말에게 물을 주기 위해 잠시 들리는 마부들에게 팔기 위해 이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건과류가 섞인 단맛으로 시작해 캐러멜 향으로 마무리되는 맛이라고 한다. 결국 못 찾아서 못 먹었다.
Stella Artois
양조장 : Leuven, Belgium
내평점 : 4/5
도 수 : 5.2%
타 입 : Pale Lager
방 식 : Bottle, Draught
벨기에의 대표 필스(Pils)는 뢰벤(Leuven) 지방에서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맥주다. 스텔라 아르뚜와는 검거나 탁한 맥주가 주종을 이루던 1926년 크리스마스를 노려 황금색 필스너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시즌성이 가미된 맥주로 나왔지만 이는 벨기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필스너 맥주 중 하나가 되었고, 주변국들에게도 인기를 받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벨기에 맥주였다. 지금은 주필러로 바뀌었지만...
Jupiler
양조장 : Jupille-sur-Meuse, Belgium
내평점 : 5/5
도 수 : 5.2%
타 입 : Pale Lager
방 식 : Bottle, Draught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인기 있는 필스너 중 하나로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주필러(Jupiler)를 취급하는 펍이나 레스토랑이 엄청 많다. 처음 마셔보자 마자 깔끔한 벨런스를 가진 맛에 반해버린 맥주다.
개인적으로 맥주를 기억하기 위해 평점을 매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객관적인 것이 아닌 순전히 100%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평점입니다. 분위기나 보관상태에 따라 맥주 맛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평점은 재미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 나름대로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5점 : 정말 맛있다.
4점 : 맛있다.
3점 : 맛있는데 뭔가 아쉽다.
2점 : 맛없다.
1점 : 먹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