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자유를 許하라

속도를 배제하고 답을 내는 사회를 꿈꾸다

by 라떼파파

#1. 그 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왕초보' 딱지를 큼지막하게 뒷유리에 붙인 소형 SUV가 앞길을 막았다. 편도 1차선이라 앞지르기도 불가능. 느릿한 거북이 운행이 계속되었고, 출근 시간마저 목전에 다다르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분통이 터지는 순간, 몸마저 달아올랐다. 씩씩거리던 감정을 달래고, 문득 올챙이 적 시절을 떠올렸다. 바들바들 떨며 첫 운전대를 잡았던 그 긴장의 순간. 연신 빵빵거리는 1톤 하얀색 화물차에 얼마나 혼줄이 났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일순간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여유를 되찾았다. '가면 얼마나 빨리 가려고...'


#2. 아이가 또래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답답할 때가 있다. '핑퐁 대화'가 원활하지 않을 때 속상함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폭풍 같은 지적질이 시작된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아빠의 속사포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가 다가온다. '아빠, 화났어?" 아이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왜 그리 안달이냐며 자신을 다그친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에 맞게 성장하는데, 조바심이 문제다. 조금은 '늦은 아이'라며 인정하면서도, 정작 속마음은 주위 시선에 속도를 맞추고 있었던 것. '단지 속도가 다를 뿐인데...'

#3. 작년부터 점심시간에 '혼밥' 중이다. 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미리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때마침 코로나 19의 영향도 있었다. 본심은 방해받지 않고 여유 있게 점심을 먹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게 다른 팀의 지인들 눈에는 '왕따'로 보였나 보다. 어느 날 옆 부서 한 차장님이 팀장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건넸다. "점심때 왜 김 차장을 소외시킵니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하하하, 김 차장이 저희들을 버렸어요." 속도가 달라 양해를 구한 것이 타인이 볼 때는 오해와 억측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야 하나...'




속도전의 사회다. 규격화된(Customized) 속도에서 튕겨진 '이탈'은 어떤 의미일까. 타인의 상대적 속도는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행여 내가 고집한 속도에 억지로 타인을 끼워 맞춰 멋대로 평가하고 해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속도를 용인하지 못하는 그 졸렬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속도의 간극을 왜 그리도 못 미더워하는가. 알고 보면 실수와 후회도 바로 이 속도의 간극에서 빚어진 경우가 허다한데 말이다.


쏟아지는 질문 속에 답을 구해보지만, 속 시원한 해갈은 없다. 속도에는 애당초 너와 나를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과 나의 속도를 조율할 뿐이며, 그조차 실패하면 어느 일방에 구속되어 비루하고 지난한 삶을 꾸려가기 마련이다. 물론 꾸역꾸역 (속도를) 맞춰 가다 보면 어느새 돌파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무서운 건 그 속도에 길들여진다는 사실. 비극의 지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란 전제 하에, 이런 속도를 조율하는 것이 모순일지 모른다. 다툼과 갈등은 속도의 괴리에서 빚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것을 망각할 뿐이다.


그럼에도 열망하는 것이 있다면,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기성 속도'에 자유를 허(許)하는 것이다. 혼밥을 먹겠노라 선언하며 나의 속도를 응원하듯이. 각자의 속도를 용인하며 불편한 시선에 태클 거는 사회. 진심과 배려의 콜라보가 이뤄지는 사회. '빨리빨리'와 '느릿느릿'의 합주가 연주되는 사회. 틀림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사회. 속도에 맞춰 답을 내지 않고, 속도를 배제한 답을 내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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