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슬픈 이중주
기억은 왜곡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떠올린 한 장면은 선명하다. 늘 두툼했던 검은색의 장지갑. 그 속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빽빽하게 자리했다. 풀을 먹이듯 빳빳했던 지폐는 아버지의 자존심이자, 호탕한 성품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가끔 비싼 음식점에서 현금을 뭉치로 꺼내어 계산하던 당신의 뒷모습에 어릴 적 나는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던 고도 비만의 장지갑이 불현듯 눈에 아른거린 이유는 얼마 전 뜻밖의 일을 겪고 나서다.
2011년 위암으로 위 전절제를 하신 아버지는 다행히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 코로나 때문에 절차적인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아산병원에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올해로 72세. 아버지는 왕왕 약간의 어지럼증은 있지만, 큰 수술 이후 몸을 잘 추슬렀다. 애연가에서 단박에 담배를 끊었고, 적절히 운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좋아하던 술 역시 가끔씩 입에 댈 뿐이다. 평생을 일궈온 사업을 4년 전에 접으며 갖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 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얼굴도 한층 화사해졌다. 기질적으로 화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제는 삶의 여유가 조금씩 배여 나온다. 실없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것만 봐도, 나는 가끔 아버지의 정체성에 기분좋은 혼란을 겪는다.
그러다 내 마음이 쪼그라든 일이 생겼다. 내시경을 위해 검사실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아버지는 당신의 휴대폰과 검은색 단지갑을 맡겼다. 휴대폰을 만지작하면서도 기다림이 무료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아버지의 지갑을 열었다. 마치 비밀 일기장을 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수술 이후 10Kg 가까이 줄어든 아버지의 몸무게만큼 낡고 해진 지갑 역시 혹독한 다이어트를 거쳤다. 한창때 지폐로 두툼했던 당신의 지갑에는 천 원짜리 2장과 만 원짜리 3장이 꼬깃꼬깃 자리하고 있었다. 신용카드가 현금을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을 없앤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적어도 현금 신봉자다. 지갑 속에 넉넉하게 현금이 존재해야 안심하는 편이다.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는 최전선의 무기라고 여긴다. 2년 전 칠순 때 아내의 아이디어로 오만 원과 만 원짜리 지폐를 이용해 돈다발을 만들어 드렸는데, 그 함박웃음을 잊을 수 없다. 속물의 비릿함이 아니라,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박제돼 있다. 하지만 누렇게 색이 바랜 아버지의 주민등록 사진과 훌쭉해진 지갑을 한동안 매만지다 보니, 나는 가슴속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과 먹먹함이 몰려왔다.
‘지갑’만으로 기억 속의 아버지가 소환됐다 일순간 사라졌다. 대기실에서 과거와 오늘을 분주히 오가며 복기했던 짧은 시간. 씁쓸한 현실의 파편이 마음속으로 헤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지갑에 천착했던 마음의 잔상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OOO보호자 분은 상부위장관 회복실로 와주세요.”
줄어든 아버지 지갑에 현금부터 채워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