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생각보다 더 추울까
버티야 된대이. 밖은 엄청시리 춥다 아이가.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K형. 때론 나를 못 살게 굴긴 했지만 두 살 터울이라 허물없이 지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한 동안 뜸했던 요즘,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 장어를 비롯해 생선 도매업을 시작했단다. 경남 통영에서 잡은 활어를 가지고 부산 전통시장과 지인들에게 내다 판다고 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중견기업 의류 회사에서 다녔던 형이다. 그러다 결혼 후 첫째가 태어나고 다음 해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김해에서 의류 판매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게를 처남에게 넘기고, 화물 지입차를 마련해 15톤 트럭을 몰고 전국을 달렸다. 여기까지가 내가 3년 전 K형으로부터 전해 들은 마지막 근황 버전이었다. 그 새 업종 전환을 했던 것이다.
"화물차는 우짜고, 갑자기 업을 바꾸셨습니까?"
"뭐, 그리 됐다. 한 7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졌지 뭐꼬. 어쩔 수 없이 폐차시켰다 아이가..."
"네? 아이고... 몸은 좀 어떠십니까?"
"목소리 들으면 모르겠나. 괜찮다. 손가락 하나 부러진 거 말고는 멀쩡하다."
전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K형의 덤덤한 목소리. 폼생폼사 스타일, 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위축된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 이야기를 꺼내 든 순간, K형은 단호하게 한 마디를 거들었다. 버티라고. 밖은 생각보다 더 춥다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K형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형, 그때 회사 그만둔 거 후회하십니까?"
"15평 남짓한 전세방에서 다섯 식구가 서울서 살기는 힘들었다 아이가. 어쩔 수 없었지 뭐..."
아니꼽고 더러워도 끝까지 버텨야 덜 춥다는 K형의 말. 그 말풍선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회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넌더리가 나던 요즘, 이 말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각박하고, 야박하고, 타박 놓기 좋은 세상이 얄궂고 얄밉다. 그리고 나에게 더 이상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다.
스펙 좋은 사람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이들을 흡수하지 못하다 보니 사회는 생기를 잃고 끝간데 없이 추락한다. 웃긴 것은 평판도 좋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사선으로 몰린다는 사실이다. 단지 감언이설 할 줄 모르는 '곰'과는 영문도 모른 채 내동댕이쳐진다. 그래서 회사는 늘 안테나를 세우라고 종용한다. 나는 그 두 행간을 오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방황한다. 누군가는 (안테나 세울 일이 없어) 오히려 속 편한 게 아니냐며 비아냥 거린다.
'버텨야 한다는 것'. 이러한 시대의 명제를 곱씹다 보면 어느덧 알싸하고 비릿한 맛이 맴돈다. 슬픈 현실에 자괴감 가득한 아픔이 차오른다. K형의 비장한 말에 담긴 슬픔과 우울이 교차한다. '버틴다'는 것이 숙명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밖은 더 춥다'는 서슬퍼른 한 마디에 움츠러든 자신을 발견한다.
K형에게 장어 15만 원어치를 주문하며 전화를 끊었다. 되돌아오는 그의 웃음에는 왠지 공허한 슬픔이 잔뜩 묻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