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8. 적극성은 없는 자리도 만든다
프로젝트 실패 후 나는 그동안 모아 돈 돈을 다 쓰고 말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할 돈이었다.
나는 급하게 일을 구하기 시작했고 친한 형의 소개를 받아 나무 농장을 알게 되었다.
농장에서 일해보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에도 있었기에 꼭 한번 일하고 싶었고 마침 호주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농장에 일하는 사람이 6명밖에 되지 않고 지원자도 워낙 많아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당장 일이 필요했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나는 이력서를 내려갔을 때 예상 질문과 답변들을 외워서 갔다.
슈퍼바이저의 이름은 190cm 넘는 데니라는 친구였는데 나의 몸을 보더니 어깨나 허리는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of course 물론 괜찮다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시켜만 주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그렇게 다른 일을 구하지 않고 2주를 기다렸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통보를 늦게 해 줄 수 있겠지 하고 2일 더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라면만 먹었는데 라면도 못 먹을 상황에 놓인 것이다.
호주에 경험 많은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원래 형식상 자리가 있으면 연락을 준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 된 것 같다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 일은 내가 콘택트 받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이력서를 넣어야 하는데 그 대기하는 날이 또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월세 낼 돈도 없었고 절박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그 나무 농장에 막무가내로 다시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아침이 돼서 나는 나무 농장으로 출발했다. 그곳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연락을 준다 했는데 아직 못 받았다고 일단 말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도착해서 사무실에 가니 2명의 한국인 지원자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분들한테 이력서 내려오셨냐고 물어보니 이력서는 이미 냈고 인터뷰 보고 왔다고 한다. 그 말은 즉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뽑으면서 면접 보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않았고 면접 대상도 아니었다. 마침 슈퍼바이저가 왔고 순간 놀래면서 왜 3명이 와있냐고 물어본다. 나는 일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두 사람도 왜 3명인지 몰랐을 것이다. 일단 슈퍼바이저는 시간이 없어 보였는지 급하게 농장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주었고 챙겨 올 복장까지 설명해주었다.
하필 또 그 두 사람은 영어도 유창했다. 나는 눈치로 아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인터뷰를 끝내고 슈퍼바이저가 떠나려는 찰나, 내가 용기 해서 말을 했다.
데니, 네가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사실 2주 넘게 기다렸다. 그런데 연락이 안 오길래 안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궁금해서 내가 찾아왔다. 내가 왜 안됐는지 말해줄 수 없니? 내가 여기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슈퍼바이저가 초대받지 않은 면접인원이 너였냐고 웃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연락 안 오면 대부분 안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물어보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그랬다.
그러더니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내 이름은 Jay 야.
그러더니 데니가 이력서들을 확인하는데 오 마이 갓 하면서 놀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당시에 너를 뽑으려고 생각했었는데 깜박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잊고 있다가 2명이 인원이 필요해서 면접을 봤었다고 한다 그러면 네가 다음 주에 나올 수 있겠니라고 말했다.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고맙다고 연신 거듭 말하며 농장을 나왔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기분이 좋아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내가 드디어 일을 하는구나! 그것도 예전부터 자연 속의 농장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는데 디디어하는구나! 그리고 일주일 후에 농장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는 가족 같은 형, 동생들을 만났다.
농장 일은 예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긴 철이어서 늘 비가 왔고 우의를 입어도 머리부터 신발까지 흙탕물에 다 젖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가족같이 친해진 동료들 덕분이었다. 출근 길이 매일 동료들과 이야기할 생각에 신이 났다.
내가 돈을 벌면서 이렇게 기분 좋게 출근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후로도 많은 일들을 했지만 나무 농장 일은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만약에 내가 연락이 오지 않는 날 그냥 체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슈퍼바이저한테 왜 내가 안됐는지 안 물어봤다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나보다 다른 2명을 먼저 뽑지 않았을까?
이전에 나는 간절함은 누구보다 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그 간절함을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고 항상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상황이 절박하니 저절로 적극성을 띠게 되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랬다.
내가 이런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진작에 이렇게 내가 적극성을 띠었으면 그동안 잃어버린 기회들도 많이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나무 농장의 없던 자리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늘 적극적인 자세로 행동하다 보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