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내린다. 나는 글을 쓰다라거나 글을 적다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다는 말 그대로 써서 입맛이 텁텁해지는 기분이고, 적다는 말 그대로 적어서 많이 부족한 기분이다. 대신 글을 내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종이 한 장에 글자들을 줄지어 내린다. 내리는 그 모든 것들은 슬프고 또 따뜻하다. 내리는 비처럼. 내리는 커피처럼. 내리는 땅거미처럼. 내리는 것은 그 무엇이든 하강하는 것이고 나는 그 무덤덤한 추락을 좋아한다. 그래 나는 내리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내 글도 누군가 사랑했으면 하는 얄팍한 바람을 가지고 늘 글을 내린다고 말한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사랑할 테니 손해 볼 것은 없다.
사실 글을 내리는 것은 어련히 수치스러운 과정이다. 활자보다는 영상이 주를 이루는 사회다. 몇 차 혁명을 운운하는 날들 속에서 굳이 종이와 펜을 꺼내어 놓는 것은 홀로 뒤처진 것은 아닌가 하는 얇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글과 책을 사랑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워진 사회에서 그것을 붙잡고 있는다니. 유행이 뒤떨어져도 몇 번은 뒤떨어졌고 경쟁력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다.
글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도 영 씁쓸한 일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가본 곳들과 가볼 곳들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고.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면 운동하는 방법이라거나 좋은 보충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악기를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을 내리는 것은 다르다. 글을 몇 자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적에 느껴지는 그 잠깐의 침묵이 참 부끄럽다. 딱히 이어나갈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부끄러운 것은 내가 내린 글들을 그 누군가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다. 가장 말하고 싶지 않은 가장 비밀스러운 하루의 감정을 굳이 지워지지 않는 글로 남기는 이유이다. 어긋난 노출증이자 또 관음증이다. 내 하루를 당신이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것이고 그 글에 관해 당신이 몇 마디를 덧붙인다면 아마 기쁨으로 졸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을 내린다. 그 어떤 큰 목표도 없고 긴 이유도 없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