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찢는 날이었다. 마지막 장을 굳이 찢어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달력을 멍하니 봐야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사 둔 새 달력을 걸어두고 몇 안 되는 소중한 날들에 형광펜을 칠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모든 것을 잠깐 미뤄둬야 했다. 당신의 슬픔을 나누어 줘야 했다. 사실 위로에는 아무런 소질도 없고 따뜻한 말에는 몸서리가 치는 나였지만. 그래도 듣는 것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을 몇 점 구워 먹으며 술을 몇 잔 마셨다. 아무래도 문제의 해결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고 할 줄 아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날이 참 맑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멀건히 올려보다가 연도가 바뀌는 그 시간 즈음 함께 잔디에 누웠다. 서로 멍하니 별을 바라보며 부질없는 단어를 나눴다. 별이 참 많이도 보였다.
별 없는 밤은 밤이 아니다. 밤이 있어야 별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별이 밤을 부른다. 늘 그렇듯 슬픔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해야 슬픔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외려 슬픔이 결국 행복을 부른다. 원체 그런 것이다. 하필 슬픔은 별 같은 것이라 눈길이 크게 가는 것이고. 그럼에도 행복은 밤 같은 것이라 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크고 또 많은 것이다.
나는 이 바보 같은 철학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랐다.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슬픔을 목도한 사람에게 행복은 이런 것이라며 설교할 정도로 무지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바랐다. 기도를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고라니 몇 마리가 울었다. 펄쩍 놀라 작은 욕설들을 허공에 뱉었다. 그리고 서로를 당기며 별빛 밖으로 도망쳤다. 인사를 고하고 홀로 돌아오며 다시 잔디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참 섧게도 많았다. 그 많은 별들이 하나하나 내게는 참 소중했다. 슬프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렇게 나이를 하나 더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