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을 앓았다. 열병이라는 단어를 입에 굴려 보다가 침대에 누웠다. 마른기침을 몇 번 했다. 콧물을 훌쩍였다. 눈이 조금 피곤해 감고서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났다. 아무래도 감기가 확실했지만 오늘은 감기가 아닌 열병이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약국에선 그저 감기약을 달라고 했다. 열병에 드는 약을 달라기엔 영 부끄러웠다.
약을 먹고 오래 잤다. 여전히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온 몸에서 땀내가 났다. 빨리 나아야만 한다고 되뇌며 몸을 뒤척였다. 난방을 틀었다가 껐다가를 반복했고 이불을 덮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계속 고민했다. 긴 옷을 챙겨 갈 걸 이라거나 술은 마시지 말 걸이라고 후회를 조금 했으나 이대로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열었다. 요리할 기력이 없어 스팸 한 숟갈을 입에 욱여넣었다. 겨우 찾은 오렌지 하나를 씹으며 차가운 달걀을 얼굴에 굴렸다. 달걀은 금세 미지근해졌다.
무릎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라 무릎을 매만졌다. 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고 역시 약국에서 감기약이 아니라 열병을 위한 약을 달라고 했어야 하나 싶었다. 모든 것이 뜨거웠다. 다시 선잠을 자다 깼다. 평소 꾸지도 않았던 꿈을 몇 편 꿨다. 꿈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계속 화를 냈다. 현실에선 나 대신 내 몸이 열렬히 화를 냈다. 아무래도 열병임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