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머핀을 하나 더 시켰다

by 석지호

커피가 필요했다. 며칠간 답답한 밤을 보내고 나서인지 몸이 목각인형처럼 삐그덕 댔다. 하필 카페는 잘 보이지 않았고 그냥 편의점 커피로 때워야 하나 고민했다. 고민이 길어질 때쯤 참 묘한 카페를 만났다. 그림을 다 그려놓고 그 위에 검은 물감을 쏟아버린 아이처럼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다 녹슨 기계만 남아있는 해병대 전우회와 누수 전문이라는 종합 설비와 다 쓰러져 잡초가 무성한 주차장 옆에 처음 보는 새하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예쁜 카페는 혼자 들어가기에 부담스러웠지만 눈꺼풀이 점점 감겨왔고 테이크아웃을 하자며 홀로 타협한 뒤 갈색 문을 열었다. 커피 원두 냄새보다는 빵 냄새가 났다. 눈을 깜빡이고 서 있으니 하얀 카페를 닮은 하얀 사장님께서 카페 소개를 해 주셨다. 생소한 기분이었다. 카페 소개를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음료는 많지 않지만 머핀이 정말 많은 카페라는 설명 끝에 커스터드며 가네슈며 하는 머핀들의 이름을 듣고 있었고. 드시고 가겠냐는 물음이 있었고. 왠지 모르게 먹고 가겠다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오렌지 크림치즈라는 긴 이름의 머핀과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디저트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체 단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식사 이외의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꽤 사치라고 생각했다. 입안에 욱여넣고 씹고 넘겨 채우기만 하는 식사와는 달랐다. 디저트를 먹는 것은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맛과 향과 또 그 너머의 무언가를 즐기는 것이었다. 식사는 생존이었고 후식은 여유였다. 어렸을 때 밥을 너무 천천히 먹어 둔하다는 소리를 듣던 아이는 언젠가부터 밥을 너무 빨리 먹어 체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시계만 바라보는 바보 어른이 된 내게 디저트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머핀을 앞에 두고 무언가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그리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포크를 들어 머핀을 잘라먹었다. 몽글몽글한 것이 입 안에 가득 찼다. 금세 다시 머핀을 잘라냈다. 머핀이 잘려나가는 것을 보며 괜한 아련함을 느꼈다. 먹으려는 마음을 먹기 전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온전하고 아름다웠을 것이었다. 그 완벽함이 부서져 빵 부스러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째 조금 미안한 풍경이었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어 둔 무언가를 조각내는 일은 조금 찜찜한 일이다. 이런 때면 포크가 참 생소해진다. 늘 곁에 두고 쓰던 도구인데 그렇게 날카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입에 단 것을 가득 넣고 커피로 쓸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흐렸던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다. 남은 조각을 지분거리며 참 맛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꽤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조는 시간을 줄여 일을 하려고 커피를 사러 나왔는데 오히려 품을 더 들여 머핀을 먹으며 앉아있었다. 퍽 우스운 일이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조금 둘러보기 시작했다. 원목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잡지를 조금 넘기다가 화분을 지키고 있는 이름 모를 꽃을 보았다. 빵 굽는 냄새를 들이키며 하늘을 떠도는 구름 몇 장을 눈에 담았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머핀 하나가 나를 붙잡아 강제로 쉬게 해 주는 기분이었다. 쉬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내가 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전화를 걸어 다음 회의를 취소했다. 숨을 쉬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머핀을 하나 더 시켰다. 이번에는 두 배의 시간을 들여 머핀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럼 두 배 까지는 아니지만 한 배 반 정도는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접시를 기대했다. 노곤함이 몰려오며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커피를 더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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