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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스코페 (3)

발치의 강가는 주름이 졌다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발치의 강가는 주름이 졌다. 계속 흐르면서 모양을 바꾼다. 소용돌이치다가 금세 사라지고 일직선으로 내지르다가 바스러진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반대편 강가의 물을 바라보았다. 멀리 있는 강은 부서지지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 흐르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삶은 언제나 슬프게 부딪히는 것의 일련이다. 꽤 빠르게 부서지고 다시 세울 즈음이면 깨져 버린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반대편 강가에서 내 삶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어떠한 고저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 또한 먼발치에서 다른 사람의 하루를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감히 알 수 없듯 당신이 내 슬픔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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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르라는 이름의 강은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를 가로지른다. 확실히 동상에 미쳐버린 나라다. 강물 속에도 헤엄치는 누군가의 동상이 있다. 백 미터가 채 되어 보이지 않는 돌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진다. 멈춰 있는 호수와는 다르다. 강 앞에서 터놓는 고민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 사라질 것만 같다. 조용히 강가를 걸었다. 바람은 별로 불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을 피해 한적한 곳에 내려앉았다. 눈을 감으면 강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강이 흐르는 소리는 다시 나를 차분하게 한다. 강은 크지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는 터무니없이 작지만 늘 큰 소리를 낸다. 몇 분 숨죽여 강의 소리를 귀에 담다가 눈을 떴다.


바르다르 강 근처에는 여러 박물관이 있다. 많은 동상들이 박물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마케도니아 도둑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무사히 물건을 훔치고 나와도 골목 여기저기 숨어 있는 동상과 마주치면 심장마비 걸리기 딱 좋을 것 같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유럽 땅의 유대인들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박물관 앞에는 무언가를 끌어안고 신발을 팔고 있는 남매의 동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만이 그런 표정을 지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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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나치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대리석이 있었다. 그 옆에는 사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몇 개의 액자는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액자에는 거울이 걸려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사진 사이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묘한 감정을 가지고 온다. 좋은 전시라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과하게 슬퍼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외면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정도의 감정이 박물관 곳곳에 색칠되어 있었다.


강을 따라서 걸으며 몇 군데의 박물관을 들어갔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세 가지 말만으로는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돌 덩어리 밑에는 무어라고 꽤 긴 설명이 써져 있었는데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무덤인 것 같았다. 알렉산더 대왕일지도 몰랐다. 다 부서져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석상도 많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언제 태어났든 상관없이 무언가를 조각하는 것을 사랑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반대편 강가를 걸었다.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몇 명 있어서 그 주변에 앉아 그들을 구경했다. 낚싯대를 꽤 많이 끌어올렸는데도 줄에 걸리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실력은 그저 그런 것 같았다.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과 짧은 대화를 했다. 서로가 하는 말을 서로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아무래도 마케도니아 정치인들은 인기가 없는 것 같았다.


“저 동상들 다 못생기지 않았어? 멍청한 정치인들 때문이야.” 아저씨가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물론 물고기는 없었다. 하루종일 동상을 따라다니며 구경했던 여행자는 조금 민망해져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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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버거를 하나 샀다. ‘케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버거였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감자튀김도 함께 먹을 것이냐고 물어봤다.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케밥 버거는 환상적이었다. 두툼한 빵 사이에 패티 대신 케밥이 들어 있었다. 야채 같은 것이 있어야 할 자리는 감자튀김이 채우고 있었다. 크게 한 입 물면 빵과 케밥과 감자튀김이 한 번에 숨 쉴 틈 없이 몰아쳤다. 분명히 어제 바스코가 마케도니아에서는 다양하고 신선한 샐러드를 주로 먹는다고 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건강한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버거 안에 감자튀김을 넣는 발칙하고 아름다운 상상을 할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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