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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스코페 (5)

테레사와 토끼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마더 테레사는 마케도니아 스코페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인도 콜카타에서 죽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를 채우기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수필보다는 소설에 더 가까웠을 삶을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리안이 말했듯 마더 테레사의 소유권이 어디에 있는지는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살아간 사람의 업적을 소유하려는 것 자체가 골계이긴 하다. 어쨌든 스코페에는 마더 테레사 기념관이 있었다.



작은 곳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수녀인지 자원봉사자인지 공무원인지는 모르겠다. 마더 테레사가 사용했다는 책들이나 옷들을 구경하고 그녀가 찍힌 사진들을 보며 그녀의 삶을 상상했다. 맨 위층에는 기도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종교 시설들을 참 좋아한다. 오래된 종교 건물이 주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 천주교 성당은 장교 훈련소에서 처음 가봤다. 훈련소 초반에는 종교 참석이 필수였는데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곳이 천주교였다. 몇 번을 일어서고 앉는 과정과 알 수 없는 성경 얘기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녀 한 분이 불러주는 노래의 기억은 곱게 접어 어딘가에 잘 꽂아 두었다. 처음 듣는 노래고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 노래를 들으면서 충분한 편안함을 느꼈다. 우습게도 그때는 전쟁에서 바드가 필요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 지금은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가 이해가 된다.


아무도 없는 미사 장소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기도를 해보려고 했는데 바라는 것이 없었다.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지 않는 편도 아닌데 늘 바라는 것은 없었다. 전에 인연이 닿던 사람이 나는 갖고 싶은 것이 없어서 선물하기 참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갖고 싶던 것은 그냥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늘 그 사람은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를 돌보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일찍 모임을 파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괜히 화풀이를 하곤 했다. 고양이에게 질투를 느끼는 인간은 스스로가 꽤 하찮아 보이기 마련이다. 하찮은 인간은 적어도 질투는 인간에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마더 테레사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숙소에 돌아왔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맥주 한 캔을 땄다. 낮에 마시는 맥주만큼 기분 좋은 배덕감을 가져오는 것도 없다. 창문을 열고 거리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침 어제 마트에 갔을 때 찾았던 ‘김치 신라면’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마트에는 짜파게티도 팔고 있었다. 대낮에 먹는 맥주 한 캔과 라면 한 컵이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다. 맥주는 마케도니아산 맥주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제 맥주 냉장고 앞에서 직원을 붙잡고 ‘마케도니아!’를 한 서 너 번 외쳤다. 직원이 그 말을 마케도니아에서 만든 맥주로 해석했는지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로 해석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맥주는 맛있었고 오랜만에 먹는 라면은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기껏 하루를 신성한 곳에서 시작해 놓고 알코올과 나트륨으로 몸을 더럽혔다. 더럽혀지는 기분은 나름대로 충만했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할 만한 일을 찾았다. 동물원에 간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동물을 참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면 동물원을 꼭 찾아가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어째 다 큰 성인 남성 혼자서 동물원 가기에는 영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종류는 나와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을 함께 가 주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야 상관이 없었지만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더 그렇다. 동물원을 거니는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때가 있었다. 내 친구들이 그 아버지가 되고 나니 어째 나는 정상적인 삶에서 탈락한 것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 동물원이나 목욕탕 같은 것을 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마케도니아에서라면 상관없었다. 되게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여행자 정도로 보일 것 같았다.


잘 관리가 되어 있다고는 못 할 곳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밌게 돌아다녔다. 관람객이 없어서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닐 수 있었다. 동물과 사람을 나누는 철창이 그리 두껍지도 많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사슴이나 흑염소와 눈싸움을 할 수 있었다. 늑대는 고기를 먹고 말은 풀을 뜯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내부를 돌아다니는 동물도 있었다. 나는 온몸은 검은색인데 목 주변만 흰색이어서 마치 목도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토끼를 반나절동안 따라다녔다. 목도리 토끼는 처음에는 열심히 도망치더니 나중에는 지친 듯 가까이 가도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토끼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사자 무리도 보고 삵도 보았다. 사람보다 동물이 훨씬 많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동물이 사람을 구경하는 곳이었다. 토끼에게 불가리아 어딘가에서 사실 토끼 고기를 먹어봤다는 고백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토끼가 다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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