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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프리슈티나 (1)(2)

평화와 전쟁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지도에서 이상한 나라를 발견했다. 국경이 점선으로 되어 있는 나라였다. 인터넷 연결이 이상한가 해서 어플을 두 번 껐다가 켜 보아도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상한 나라의 이름은 코소보였다. 2008년에 세르비아에게서 독립을 선언했지만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많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호수가 유명하다는 마케도니아 남부 쪽으로 내려갈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행선지를 바꾸게 됐다. 코소보 입국 도장이 찍히는 순간 세르비아 쪽은 갈 수 없을 것이 뻔했지만 신생 국가를 보게 된다는 것이 더 설렜다.



마케도니아에서 코소보로 가는 대중교통은 애매했다. 수도를 둘러보고 여러 자연 동굴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차가 없으면 어려울 것 같았다. 한국 국제 면허증이 코소보에서 인정이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15년도 채 되지 않은 나라에 체계적인 공무원 시스템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호스텔 직원에게 코소보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직원은 차로 함께 이동하는 1:1 투어와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매일 먹던 케밥 버거 세트를 몇 달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 유튜버였으면 별 고민 안 했을 것 같다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발칸 반도 여행을 유튜브로 만들어보고자 고프로를 가져왔었다. 한 번의 촬영 이후로 고프로는 캐리어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고프로는 일종의 ‘수치심의 지팡이’였다. 그 지팡이를 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비디오를 찍고 있냐고 물었다. 지팡이에 대고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는 것도 영 고역이었지만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여행이 일이 되어간다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의무가 되는 과정은 피곤하기만 하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지 않은 것도 비슷하다. 재능이 없는 것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는 순간에 밀려오는 노곤함은 버티기 어려웠다. 눈 딱 감고 투어를 결제했고 페트릿은 아침에 보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페트릿 할아버지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스코페에서 출발해 국경을 거쳐 코소보의 수도인 프리슈티나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 그치지 않았다. 코소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알바니아 사람이라는 것부터 페트릿은 어떤 재즈 밴드의 드러머였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페트릿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독수리에서 왔고 내 이름의 뜻은 밝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줄 때쯤 프리슈티나에 도착했다. 수도에 걸맞지 않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어린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페트릿은 그만큼 코소보는 안전한 곳이라며 뿌듯해했다.



페트릿 할아버지가 소개해주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NEW BORN’이라고 써져 있는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코소보를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나라의 모토 앞에서는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근처에는 미국 성조기와 클린턴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다. 미국이 코소보의 분리독립을 지지해 줘서 큰 힘이 되었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코소보 독립을 주도했다는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었다. 코소보 국기보다 미국 국기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았다.



몇 개의 동상과 몇 개의 모스크를 거치며 거리를 걸었다. 페트릿은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아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페트릿을 알아보고 인사하러 다가왔다. 덩달아 계속 인사를 했다. 다행히 한국은 코소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는 한국에도 독립기념일은 언제냐고 물었다. 사과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는 한국은 미국의 좋은 친구라는 말을 했다. 나는 코소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사과는 얼마냐는 얘기밖에 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사과 하나를 공짜로 주면서 요즘 딸내미가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공부를 안 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이름도 모르던 나라에서 ‘사랑의 불시착’ 이야기를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갔다. 뭔가 내가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카드를 꺼냈지만 페트릿이 손사래를 쳤다. 커피 두 잔을 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내 대화 소재는 꽤 빠르게 소모됐다. 결국 종착역은 군대 얘기였다. 전역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밖에 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페트릿이 가장 재밌어하고 관심 있어한 주제는 한국의 군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코소보의 군대는 만 명이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세르비아를 늘 걱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숫자였다. 최근에도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공존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았다. 페트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프리슈티나 시내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솜사탕을 찢어 흩뿌린 것 같은 구름이 몇 점 떠 있었다. 12월 27일이었다. 그 다음날 세르비아군은 군 전투 준비 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했고 국경에 군 장비들을 집결시켰다. 떠난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카페에서 나와 광장을 걸었다. 광장 한편에는 지역 행사 같은 것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손짓하길래 천막에 다가갔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름 모를 음식이 담긴 접시와 포크를 받았다. 반짝거리는 눈들이 부담스러워서 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함이 확 퍼졌다. 하나는 피자 도우 같은 모습 안에 고기나 견과류가 담긴 것이었고 하나는 팬케이크를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구운 것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고라’라는 지역을 홍보하러 나온 행사인 것 같았다. 구글에 검색을 해 보니 코소보와 알바니아에 걸쳐 있는 넓은 지역을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강원도 홍보를 하면서 수수부꾸미를 나눠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서로를 ‘고라니’라고 불렀다. ‘고라니’들은 음식과 음료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사진과 그림을 전시하고 전통 옷을 홍보하고 있었다. 새하얀 바탕에 붉은 무늬가 매력적이었고 치렁치렁한 장식들이 옷 이곳저곳을 꾸미고 있었다. 타국의 전통 옷에 매료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지만 나는 금세 그 옷에 빠져버렸다. 내게 콜라를 건네준 꼬마 아이는 자기 언니들을 데려왔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요?” 깜짝 놀란 내가 대답했다.


“인사만 할 줄 알아요. 요즘에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거든요. ‘사랑의 불시착’ 알아요? 한국 사람이랑 북한 군인이 만나는 내용인데.” 그녀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뉴스 어딘가에서 동유럽 쪽에 한국 드라마가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당연히 과장 광고이겠거니 생각하며 기자들도 어지간히 취재할 것이 없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을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 놀랐던 것은 ‘니하오’나 ‘곤니치와’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과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눈치를 보지 말고 공식적인 수교를 맺어야 했다. 정치적 이유는 막론하고 아무튼 그랬다. 그녀도 ‘고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예쁘게 웃는 것도 ‘고라’의 전통인가 싶었다. 나도 첫사랑에 빠진 고등학생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조금 번잡스럽더라도 자유 여행으로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대화를 더 하고 싶어도 페트릿이 기다리고 있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 다들 이 전통 음식들을 만들 줄 아는 거예요?”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넘기며 물었다.


“아뇨!”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냥 아르바이트인데요!” 그녀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하긴 수수부꾸미를 만들 줄 아는 강원도 십 대는 한 명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와 얘기하는 중에 카메라 한 대와 기자 한 명이 다가왔다. 어디 지역의 취재 리포터라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했다. 나는 분명히 코소보라는 나라의 존재에 대해 이틀 전에 알았고 음식이나 문화는커녕 수도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에 와보고 싶었다는 말이나 독립을 경험했던 나라로서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말을 했다. ‘고라’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런 음식과 옷이 있는 곳이라면 시간을 내서 꼭 가보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다 예쁘고 귀엽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를 뒤로 하고 도서관 근처에 들렀다. 코소보 국립대학의 도서관이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못생긴 건물 안에 꼽힌다는 것 같았다. 둔탁한 콘크리트 건물에 철제로 된 벌집 모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페트릿에게 폴란드 수도에 가면 이것보다 더 못생기고 큰 건물이 있다는 말을 했다. 심지어 이름은 ‘문화 과학 궁전’이어서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는 험담을 했다. 페트릿은 소리 내서 웃었다. 마더 테레사와 관련이 있는 성당 시계탑 위에는 스파이더맨이 있었다. 오늘 축제라도 있는 것인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분장을 한 사람들이 로프를 매고 활강했다. 페트릿은 여기 한국에서 온 친구도 해 보고 싶어 한다고 소리쳤고 난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쳤다.



코소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자연 동굴이었다. 카드 리더기가 없어 카드를 쓸 수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은 마케도니아 데나르 뿐이었다. 곤란한 표정을 짓자 페트릿이 차에서 동전 몇 개를 가져왔다. 패트릿이 아니면 갈 수 없었을 동굴에 들어섰다. 지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유석과 석순은 곧게 자라는 줄만 알았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휘어진 종유석은 어디 화성 구석진 데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처럼 보였다. 사우나보다 더 습한 곳이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동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박쥐 비슷한 것이 날아다녔고 버섯 비슷한 것이 자라고 있었다. 기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오늘 하루와 비슷했다.


다시 먼 길을 달려 숙소로 향했다. 페트릿은 짧은 코소보 여행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다. 조금 생각하다가 다 좋았는데 거리를 걸을 때 느껴지는 평화로움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진심을 말했는데 조금 억울했다. 페트릿은 내가 ‘고라니’ 여자와 대화할 때 제일 밝게 웃었다고 했다. 억울함은 눈 녹는 것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예리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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