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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스코페 (2)

동상들의 도시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여덟 시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학교를 가고 있었고 직장인들은 회사에 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속해서 갈 곳을 고민해야 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아침으로 피자가 거북하지 않은 듯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조각 피자를 하나씩 물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지만 피자 한 조각을 사서 우물거렸다. 맛은 없었다. 원체 하루가 바쁜 사람들을 위한 아침은 그런 것이다. 어떻게든 몸에 에너지를 넣어 재부팅을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아침을 먹기 싫은 것은 그런 억지스러운 재부팅에 지쳐서일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불가리아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무료 투어를 찾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속해 돌아다니는 것이 싫어서 먼발치에서 무리들을 따라다니며 구경할 예정이었다. 마침 투어가 시작되는 곳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동상이 있는 알렉산드리아 광장에 도착했다. 예상한 것처럼 투어 가이드가 한 명 서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투어를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시계를 몇 번 확인했다. 잘못된 시간은 아니었다. 사람이 오기를 끝끝내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가이드에게 다가가갔다.


“안녕하세요! 스코페 도보 투어 맞나요?” 내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무도 없네요!” 바스코가 웃으면서 말했다.


살다 살다 무료 도보 투어에 사람이 없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바스코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지는 않은 듯 것 같았다. 번잡함 없는 투어라면 또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내심 기대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혹시 모를 지각생들을 위해 10분 정도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스코페에서 가볼 만한 곳이나 맛있는 음식점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는 처음이에요. 스코페 다음에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내가 말했다.


“마케도니아! 지호는 이 나라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마케도니아 맞지 않아요? 다른 이름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북마케도니아라고 부르거든요. 그리스와 정치적인 이유로 이름이 그렇게 됐어요.”


“북마케도니아? 처음 들어봐요. 한국에서는 그냥 마케도니아라고 하는데요.”


“저는 오늘부터 한국을 사랑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되죠?” 바스코가 우산을 빙빙 돌리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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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코는 기다리자고 했던 10분을 넘어서 북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 말해줬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나 불가리아까지 포함한 역사적인 지방을 말하는 것이라고 그리스가 반대했다는 것 같았다. 바스코가 말하는 ‘멍청한 정치인 놈들’의 협의에 의해서 2019년에 나라 이름이 북마케도니아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그는 거리 곳곳에 있는 동상들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불가리아를 그라피티가 채우고 있었다면 마케도니아는 동상들이 채우고 있었다. ‘멍청한 정치인 놈들’이 돈을 아름답지도 않고 역사적이지도 않은 동상에 돈을 퍼붓는다는 것 같았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북마케도니아로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바스코는 남한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부르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말 한 블록마다 동상이 있었다. 바스코가 말한 대로 확실히 미학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민들이나 여행자들은 몇 초 바라보지 않고 지나갔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너무나도 많았고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든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걸어 다니며 동상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광장부터 동상 천지였다. 심지어 광장 가운데에는 머리를 목 끝까지 젖혀도 다 보기 힘든 알렉산더 대왕의 대형 동상이 있었다. 그런 것은 묘한 압도감을 주었다. 몇 천 년 지난 사람은 아직도 누군가의 기억에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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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인들의 동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두 닦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는 구두닦이 동상이 있었다. 시계나 옷 같은 명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 거리에는 노숙자 동상이 있었다. 정육점 근처에는 소 동상이 있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확실히 슬픈 것을 웃어넘길 줄 알았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동상들이었지만 혼자 상상하면서 돌아다니기엔 꽤 괜찮은 것들이었다. 알렉산더 대왕 동상보다 구경하기 편했다. 구두닦이 광장도 없고 노숙자 거리라는 이름도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나 또한 죽으면 몇 천 년은커녕 몇 년도 가지 않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알렉산더 대왕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멋지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려면 얼굴이 아플 것 같았다. 어차피 동상이 되어야 하는 거라면 대충 누워서 배나 긁고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아무도 안 보고 지나가더라도 확실히 그게 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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