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혼자 이 시골에서 가족 없이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특히나 이곳이 비바람도 자주 불고 날씨도 변덕스러워서 그런 거 같다. 얼마 전에는 산이 없는 허허벌판 중부답게 토네이도가 왔다. 밤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바람이 불고 밖에는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는 밤을 보냈다.
한국에서 1월에 왔을 때는 눈폭풍이 와서 비행기가 전부 취소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봄학기, 오자마자 이곳을 떠날 날짜를 정해놓고 디데이 카운트를 하고 있다. 이제 학기 마무리까지 2주 정도가 남았다. 4월 25일 이곳을 떠났다가 8월 중순 학기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돌아올 예정이다.
한국에서 미국에 오게 되는 이유나 경로는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싫었던 것도, 미국 생활이 그립거나 갈망하고 좋았던 것도 아니다. 박사를 하려면 미국에 오는 것이 교육적인 환경이나 기회를 봐서 좋았을 거라 생각했고, 그 부분은 맞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유학하는 것이 주된 이유였으나 사춘기가 시작한 아이는 한국에 남고자 했다. 기러기인데 반대 기러기다. 요새는 한국이 살기 편하고 좋아서 굳이 일찍 유학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 같다.
미국에서 학생일 때와 교수진일 때의 생활이 다르다. 학생시절에는 주변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고, 힘든 여정을 함께 하는 전우애를 나눌 수 있는 동기들이 있어서 혼자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특히 개인적인 업무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교수 같은 직업이라면 동료랑 가까워질 시간도 기회도 없다. 마음이 맞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귀찮기도 하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을 챙기느라 바쁘기에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다. 개인적인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유는 많은데,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한정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간혹 외로움과 우울함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하고 있는 선택이 잘 한 선택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할 게 없다. 아무것도 없어"라는 이 표현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문장이다. 집 앞만 나가면 카페부터 시작해서 마트, 쇼핑할 곳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미국 중부에서도 인디애나에 있는 작은 캠퍼스 타운인데 갈 수 있는 카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그 또한 일찍 문을 닫는다. 음식도 다양하지 않다. 코스트코를 가는데 1시간, 오는데 1시간, 장 보는데 1 시간 해서 3시간은 잡고 가야 한다. 약 45마일의 거리인데 72km 정도 되니깐 서울에서 천안 북부까지 가는 거리다.
박사를 졸업하고 첫 직업을 선택할 때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얼마나 시골에 있는지 알고 놀랄 때가 많다. 교수들은 연구를 시키고, 학생들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넓은 캠퍼스를 만들고 다들 시골에 배치해 놓은 것 같다. 나에게 졸업 후 기회와 안정감을 준 감사한 곳이지만 오래 몸담기보다는 첫 커리어로 발을 디디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첫 커리어에는 눈을 높여 까다롭기가 어렵다.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할 때는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편하게 살만한 곳은 개인마다 정의가 다를 것이다. 나에게 편하게 살만한 곳이란 우선 날씨가 너무 춥지 않고, 옥수수 밭보다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좋겠다.
인생에는 커리어가 전부가 아니니깐. 나중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며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삶이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