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년 만에 보낸 긴 여름 방학
올여름 박사 졸업하고 처음으로 한국에서 3개월 남짓의 긴 여름을 보냈다. 박사 때는 여름에 연구 조교를 하거나 논문을 써야 해서, 박사 졸업하고는 새로운 주로 이사를 하고 학기를 준비해야 해서 비로소 4년 만에 길게 한국에 나갈 수 있었다.
교수 직업의 장점을 무엇보다 방학이다. 여름 방학 시작과 함께 한 달 여정도 여행을 했다. 4월 말 봄 학기가 끝나자마자 인디애나를 나와서 애리조나에서 친구들의 결혼식을 가고 캘리포니아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미국 중서부 인디애나 문화는 옥수수밭과 농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는 다양한 음식과 문화가 있다. 한국으로 직접 들어오지 않고 대만을 거쳐서 오래간만에 친한 친구도 보고 왔다.
정년교수라면 여름동안 연구 실적을 빠듯하게 올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더 없었겠지만, 지금 현재 있는 비정년교수 (Non-tenure line)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언젠가 이직을 하게 되겠지만, 처음 갖는 여름방학을 여유 있게 보내고 싶었다. 물론 여름 방학 기간에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지만 100% 원격근무- remote working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상관은 없다.
한국에 도착하니 드디어 집에 온 느낌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흔한 일상이라서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밤에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고, 도시에 약을 하는 노숙자도 없다. 음식은 (미국 인디애나에 비해) 너무나 맛있고, 물가가 비싸졌다고 해도 가격대비 품질과 맛의 가성비는 최고다. 미국에서는 쇼핑을 오히려 잘 안 하게 되는데 옷도 라인이 예쁘지도 않고, 가격 대비 좋은지 모르겠다. 한국은 일단 Made in Korea면 믿고 사게 된다. 예쁜 카페도 정말 많고 늦게까지 열어서 저녁에도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병원 투어도 빼놓을 수는 없다. 치과, 안과, 피부과, 건강검진까지 예약하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고 빠른 진료와 착한 비용에 다시 한번 감동한다. 그렇게 2개월 조금 넘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한국 시간은 미국보다 속도가 빠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그런가 싶다.
4년 만에 와서 느낀 한국 여름은 너무 습하고 더워졌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걸 너무나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왔다간 친구들이 여름이 너무 덥다고 했는데, 애리조나보다 더 덥진 않으니 견딜만한 더위가 아닐까 싶었다. 이번에 길게 있어보면서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동남아급 습도와 열기에 깜짝 놀랐다.
러닝 열풍은 여름 더위에도 식지 않았다. 습한 여름밤에 퇴근 후 뛰는 남녀노소의 러닝 열풍을 보고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 그래서 한국에는 날씬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인디애나는 달리기에 좋은 환경 - 사람도 없고 산도 없는 평지-을 갖고 있지만, 많이 달리거나 걷지도 않아서 네모난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있으면서 외모 평가도 너무 많이 해줘서, 긴장을 갖고 유지를 해야 했다. 지인들이 미국에서 살이 쪘다, 피부가 안 좋아졌다, 꾸밈을 너무 내려놨다는 아낌없는 애정 조언 (?)을 해줘서 한국에 왔다 가니 그나마 다시 세련되져서 가는 것 같다.
미국에 갈 날이 왔는데, 자주 다니는 병원 선생님이 "양다리 생활이 제일 좋죠." 말한다. 한국에 있으면 인구 밀도에 치여사는 데 미국에 가면 그렇진 않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미국이 생각나면 가고, 미국에 있다가 연말에 한국에 또 올 수 있으니 말이다. 맞는 얘기다. 그래서 교수진은 돈은 적게 받더라도 이중생활을 할 수 있는 방학이 있으니, 한국에 가족이 있는 나는 미국에서 꼭 해야 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맞는 방학의 소중함을 느끼고, 지속 가능할 수 있게 이제 연구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