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수영모에 빨간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다섯 살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고 지레 짐작해 본다면 참 밝은 아이일 거라고 너나 할 것 없이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 모습을 조금 더 자란 초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모를 아이는 그 모습이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게 있다지만 내게 그 사정은 어린 시절 내내 따라다니느라 한껏 밝았던 아이의 표정을 서서히 풀이 죽게 만들기도 했다. 부모의 부재는 어린아이를 따라다니며 채워지지 않는 자리를 티 나게 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극적인 아이로 변모해 갔다. 물론 사춘기가 와서 그랬을 수도 있다지만 너무 낯선 그 사진의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때론 그 아이가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 걱정도, 아무런 아픔도 없어 보이는 저 얼굴이 내가 갖고 있었던 얼굴이 맞는지 의심스러웠고, 때로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의 나와 사진 속의 나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어쩌면’이라는 말을 되뇌는 나이를 지나 온 나는 더 이상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아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섯 살과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다 엄마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떠난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다 말하진 못하겠지만, 나 나름의 격변의 시기를 잘 견뎌 낸 그때의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믿기에, 나는 ‘어쩌면’이 아닌 ‘지금’에 잘 안주하고 있으리라.
어릴 땐 그랬다. 눈을 감고 뜨면 지금 이 모든 건 꿈일 거라고, 정말 다시 자고 일어나면, 어쩌면 정말 다른 세상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모든 건 기나긴 꿈속의 일부일 거라고. 그렇게 어린 나는 현재를 부정하고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섯 살의 아이가 아니었고 나는 벌써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기억하지 못했고, 더 오래도록 사랑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엄마가 된다고 했을 때 내가 엄마로서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지 걱정했고 염려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의 부재로부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또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받은 만큼 주고, 받지 못한 만큼 더 주는 것. 내가 다행스럽게도 여기는 것은 부모의 부재 앞에 내가 부모 될 자격이 없다 의심하지 않고 나의 부모보다 자식을 더 어여삐 여기며 사랑으로 키워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는 나의 조부모님이셨다. 아빠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고 내게는 곧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이셨던 분. 나는 그들로부터 가족의 사랑을 대물림받았고 나는 그렇게 성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현존하는 할머니의 울타리 아래에서 어른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지난주 목요일, 우리는 글감을 찾았고 나는 그중 두 개의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나의 부모라면 나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나요?
내가 나의 부모라면 그동안 잘해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이 두 가지 주제에 맞춰 생각하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나는 이 질문이 내게 어떻게 의미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조부모님 손에 맡겨진 그날, 나는 미숙하지만 나 자신의 엄마이자 아빠가 되었다. 나는 나를 최선을 다해 키웠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내가 어떻게 성장했으면 좋겠는지, 잘해준 점과 아쉬운 점은 없는지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