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가장 먼저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방의 벽은 견고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할머니가 만지는 물건들의 소리는 잘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소리가 날 때쯤이면 자연스레 귀가 틔이기 시작했고 이내 일어나야 했다. 그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하는 내 동생이 더 신기했다. 해는 조금씩 위로 더 높이 향하고 햇살은 눈부시게 방 안까지 들어와 비췄다. 조금 이른 아침은 쌀쌀하기도 했고 때로는 더위에 지쳐 일어날 때도 있었다. 아침에 가장 먼저 듣는 소리 다음으로는 화장실로 향할 때마다 듣는 마당 주변에서 나는 새들의 소리였다. 보이지도 않는 모습들 사이로 새들은 어디서 그렇게 지저귀고 있었던 걸까.
딸을 데리고 다시 찾은 할머니의 집에서 그날처럼 나는 눈을 떴다. 알람은 해가 내뿜는 햇살이었고 핸드폰의 알람소리 대신 새들의 재잘대는 지저귐이 그 모든 것을 대신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믿을 수 없었지만 일곱 시도 안 된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 학교를 다닐 때는 그게 너무 당연해서 잘 들리지 않았는지 새삼스럽지 않아서인지 귀에 그리 오래도록 박히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듣는 소리에 나는 핸드폰을 들고나가 우리 집 감나무와 하늘을 카메라 속 영상에 담으며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에 집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창문은 소음 차단을 너무 잘한다. 그래서일까. 문을 닫으면 집 안에서 나는 소리말 고는 바깥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바깥세상의 소리를 듣기 위해선 창문을 의도적으로 열어야만 한다. 바람이 불 때 나무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새들의 지저귐도 차가 지나가며 나는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내는 목소리도.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오면서 자연스러운 소리는 너무 많은 것들이 내는 소리로부터 소음이라 바뀌었고 그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집의 문은 더 견고해져야만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함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내 생활반경을 들여다보며 듣는 소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소리,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물건을 만질 때 나는 소리들. 어떻게 보면 소리는 어디에서고 쉬지 않고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혼자인 시간에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는 다른 소리를 채워 넣는 걸까? 다른 소리를 채워놓지 않고 살던 그때의 나는 어땠지? 그저 흙을 밝고 지나가는 내 소리에 집중하고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나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마을 할머니의 목소리, 마을 회관에서 안내하는 방송 소리,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나 경운기 소리. 그런 것들이었는데. 그땐 소리보다 조용한 것들의 소리가 더 컸던 것 같다. 시시했던 시골이니까. 딱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던 곳이니까 그랬던 것 같다.
어제부터는 비가 온다. 오락가락. 오다 말다 제 멋대로 내렸다 그쳤다 반복한다. 얇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있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때 사뿐히 내려앉은 빗소리도 우산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빗방울 소리도 가만히 듣고 있음 참 좋아진다. 난 소리가 소음이 되지 않는 건 내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 기분이 처지면 그날은 어떤 소리도 듣기 싫다. 그럴 땐 오히려 지저분한 소리에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되도록 항상 기분이 좋을 순 없지만 기분 좋음 같은 상태로 나를 있게 하려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어디에서 나는 소리건 기분 좋게 듣고 넘길 수 있으니까. 그 소리에 또 나를 웃게 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