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무척까지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더웠다. 여름의 한가운데였는지 시작이었는지 끝이었는지 모를 어느 날, 똑같은 주말의 아침을 나는 사랑했다. 내가 그날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 별것도 아닌데 기억하고 그날의 내 기분이나 피부 가장 가까이 닿은 감촉 같은 그 비슷한 것들이 내게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학생 시절, 동생과 나는 성남에 자취방을 구했다. 우리가 처음 구한 자취방은 반지하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 그날은 아마 주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부터 돌린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 빨래 통에 옮겨 닮았다. 문을 열고 슬리퍼를 신고 한껏 무거워진 빨래 통을 양손으로 꽉 움켜쥔 채 회색빛 계단을 올랐다. 붉은빛 감도는 갈색 벽돌을 따라 위로, 위-로 계단을 밟고 올랐다. 마침내 회색빛 계단의 끝에 오르면 다시 회색 문이 기다린다. 그 회색 문을 열면 직사각형 밖으로 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옥상 위로 올라와 내가 좋아하는 색을 한껏 눈으로 담아낸다. 하늘이 좋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도 좋다. 햇볕은 뜨거웠다. 젖은 옷들을 하나씩 꺼내 빨랫줄에 옷들을 널었다. 햇볕에 색이 바래진 집게와 그보다 오래되어 부식된 집게들을 이따금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게 옷에 집었다.
나는 햇볕이 쨍한 그 옥상에 올라 허리를 펴고 깨끗하게 세탁된 옷들을 빨랫줄에 너는 그 행동이 좋았다. 이따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사물의 반짝거림을 나는 사랑했다. 눈으로 담아내는 것들이 별 것도 아닌데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사랑했다. 그때, 그 순간만 동하는 감정이 주는 것들의 부산물들. 빨랫줄 가득 널어진 옷들이 손가락이 튕긴 줄에 한 번 살랑, 바람에 이따금 흔들거릴 때, 바람이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맺혔던 땀을 식히고 그걸 내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수집하고 보관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좋아했다.
반지하에서 살았을 때 곰팡이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아서 오래 살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그런 걸 보면 내 기억에서 반지하의 이미지는 그리 썩 좋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래도 그 집에서 오롯이 좋았던 기억은 옥상에서 빨래를 너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가장 높이, 가장 가까이에서 그날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 주는 것을 받아들일 때의 기분은 더워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좋다. 어쩌면 나는 집보다 반지하에 딸린 옥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뜨거운 햇볕이 내 등을 내리쬐고 내 머리칼에 진한 입맞춤을 건넬 때도 뜨거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빨래를 널고 있는 순간에도, 가득 찬 빨래 통이 하나 둘 비워지고 가벼워진 빨래 통을 한 손에 들고서 집 안으로 들어갈 때도, 문을 열 때 생기는 그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칠 때도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난 아주 사소한 것에서 기운을 얻고 또 충만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은 오지 않지만 그때와 똑같은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지만 나는 여름의 계절이 주는 그 따사로움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길을 걷다 문득 그날과 비슷했던 감각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를 놓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날 그 순간의 찰나를 참 좋아했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