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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ug 26. 2024

느리지만 게으르지는 않아요.

0. 에필로그 



0. 밑바닥에도 디딤돌은 있다.

지난 1년, 0에 다다르는 시간이었다. 30대에 승진보다 백수가 되기를 선택했고, 결혼보다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0에 가까워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협하지 않기'였다. 주변에서 자신의 삶을 현실과 상황에 타협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나만의 속도와 길을 가기 위한 선택들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들과 같은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알았다. 이제야 진정으로 0에 도달했음을. 


0은 나에게 전환점이었다. 깊은 수면 아래까지 다다르면 그 끝에도 다시 박차고 올라올 수 있는 '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 헤맨 후 바닥을 차고 위로 튀어 오르고 있다. 이제 다시 100을 향해.



1. 간절하면 핑계대신 방법을 찾게 된다. 

2024년 1월 1일을 가족들과 함께 속초에서 보냈다. 반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2024년 목표를 적을 때 '책 출판하기'를 썼다 지웠었다. 가장 간절히 바라는 꿈이었지만 곧바로 이루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고 퇴사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 원고를 마감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매일 창작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관련된 책은 모두 다 찾아서 읽고 멋진 소제목까지 리스트업 했지만 실제로 내가 써 내려가는 글은 볼품없고 값어치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포기할까?'를 수백 번씩 반복했다. 


마감이 이틀 남았을 때, 난 원고의 마지막 3분의 1을 다 채우지 못했다. 가장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건 '간절함' 하나였다. 이 기회가 나에게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이틀 동안 초인적인 힘이 나왔다. 결국, 마감날 저녁 10시에 최종 원고를 보낼 수 있었다.


100을 향하는 길에 꽤 속도감이 붙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0에 도달했을 때 디딤돌을 박차고 올라왔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이제는 길을 잃지 않고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2. best one이 아니라 only one이 되기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출판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오랜만에 연락했다. 친구는 의젓한 한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의 꿈을 조금씩 이루어나가는 나를 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 또한 친구가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대견스러우면서도 닮고 싶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각자 살아갈 인생이 있는 것뿐이야" 


나는 내가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찾은 이후로 더 이상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의 인생은 부러운 거 투성이지만 나는 나만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뿐이다. 각자가 원하는 인생과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기에 우리는 서로 경쟁상대가 아닌 응원상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유일무이한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나만의 인생에서  only one이 되고자 한다. 


3.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아요.

지혜 씨는 시속 30km만 달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방전이 빨리 돼서 고속도로는 절대 타지 않고 어린이 보호구역만 다니는 경차 같달까요?


얼마 전, 지난 1년 동안 나를 지켜본 지인이 해준 말이다. 남들은 브레이크도 없이 고속도를 시속 100km로 쌩쌩 달릴 때 나는 동네 어린이보호구역만 다닐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신기하게도 실제로 나는 모닝을 타며 고속도로는 타본 적 없는 장롱면허 10년 차다.  


하지만 나는 운전뿐 아니라 평소에도 느린 사람이다. 걸음도 행동도 성장도 느리다. 그러나 느려도 게으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느린 게 아니라 나만의 속도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 나의 속도가 너무 느려 보이지만 나에게는 최대 속력인 것이다.


내가 나의 최선이 무엇인지, 나만의 속도가 몇인지 안다면 최대 속력을 내고 있을 때 스스로를 탓할 수 없게 된다. 게으름이란 스스로의 최대치를 알면서도 속력을 내지 않을 때 붙이는 말이다. 지인이 말한 것처럼 나는 방전이 빨리 되는 경차가 딱 적당하다.


나의 한계와 최대치를 통해 속력을 알게 되면 나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나는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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