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Apr 22. 2024

인간보다 행복한 동물은 없다.

3-2. 느린 시선으로 보는 세상


완행열차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만난 첫 번째 동료는 '동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반려묘 '도도'를 통해 나의 첫 번째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은 반려인을 뛰어넘을 수 없다. 
photo by Unsplash


'반려동물은 반려인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반려인 생활 여건에 따라 반려동물의 삶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선택이 없다. 이 말은 즉슨, 동물이 인간에게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동물권'도 생겨날 수 없다. 


나는 '동물권'을 위해 글을 쓴다. '도도'와 같은 길고양이가 좋은 가족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물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학대당하는 사회 분위기가 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동물권'으로 향하는 마음은 때로 누군가에게 '불편함'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국가에서는 동물보호 목적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나 '반려견 놀이터'등의 시설물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은 국가에서 보호해야 할 '인간'도 많은데 '동물'까지 보호하냐는 주장이다. 


가끔 공인이나 연예인이 큰돈을 후원할 때도 이런 시선은 언제나 존재한다. 후원 대상을 두고 우리는 끊임없이 싸운다. 해외 아이들을 위한 후원을 하면 국내 아이들이나 도우라는 비난, 유기견 센터에 후원을 하면 보육원에 있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핀잔. 


나는 '동물의 권리'가 '인간의 권리'보다 앞설 수 없음은 인정한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동물은 어느 정도 인간에게 '종속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인권'이 '동물권'보다 우위에 있다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권리'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건 인정하지 않는 바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photo by Unsplash


 '권리'를 앞에 두고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싸움을 하게 되면 결국 권력에 의해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결과를 만든다. 인간이 동물보다 권리가 우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는 결론이 위험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우리 사회에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 동물을 소지품처럼 소유하는 행위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도와줘야 할 대상은 '권리'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대상이 '동물'이 될 수 도 있고 '난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 지구상에서 도움과 보호를 받을 가치를 지녔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길고양이 급식소'와 '반려견 놀이터'는 그들을 위한 게 아닌 인간-동물이 좀 더 잘 어울리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을 위한 공간'이 있으면 '동물들을 위한 공간'도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게 어울려사는 건강한 자세다.


자연의 아낌없는 호의가 계속되면 인간은 끝없이 권리를 행사한다. 








다수를 위한 세상은 인간답지 않다.
photo by Unsplash


다수를 위한 세상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든다. 


희귀질환자들은 고가 약품이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생존과 연결된 치료제를 빚을 내며 사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가에서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소수'이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자 1명을 위한 치료제면 감기환자 수백 명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언제나 '다수'를 위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감기환자 수백 명은 감기약이 없어도 '생존'에 문제가 없는 반면, 희귀질환자는 치료제를 못쓰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다수'를 위한 선택이 정말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는 암묵적으로 '다수'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은 '다수'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된다. 우리는 소수이든, 다수이든 상관없이 '나'다운 삶을 살고 싶지만 '다수'가 아닌 선택지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나답게 사는 것보다 다수에 속하는 삶을 살려고 애쓴다.




우리가 모두 나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동물'과 같은 '소수'를 외면하면 안 된다. '소수'를 품어야지만 그 어떤 선택에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전 13화 완행열차를 타는 방랑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