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Apr 15. 2024

완행열차를 타는 방랑자

3-1. 느린 시선으로 보는 세상 

나는 나무들과 함께 무성했던 나뭇잎을 다 떨구고 새로운 잎을 피어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제 어떤 나무로 성장하고 싶은가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멘토링 수업은 나에게 그냥 '나무'가 아니라 '어떤 나무'가 될 것인가를 탐색하는 데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
photo by Unsplash


과거에 '작가'를 꿈꾸었던 어리 나에게도 한 번도 되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작가'라는 꿈은 그저 동사가 아닌 명사로 계속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은 명사에서 동사로 바뀌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무엇을 추구하지?라는 질문으로 해석되었다. 결국 작가는 나만의 글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무엇을 주장하느냐,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느냐가 없다면 아예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멘토링 수업 고정 과제로 '산책하기' 미션이 있었다. 이 산책에서 중요한 건 '여유'였다. 목적이 없는 산책이 돼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꽤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목표지향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목적 없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목적지를 정해놓고 그 길을 가는 시간을 '산책'이라 우겼다. 하지만, 목적지를 향한 산책에서 결국 얻은 건 '목적지'에 관한 잡념뿐이었다.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후에야 결국 '목적지' 없는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느린 시선으로 발견하는 세상 
photo by Unsplash


목적 없는 산책을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시간적 제약이 사라지자 몸의 리름이 달라졌다. 아파트 뒤에 있는 천을 따라 유유히 산책을 하기 시작하자 말 그대로 산책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중간중간 멈춰 서며 생각에 빠졌다. '목적'을 잃고 느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풀 숲에서 인간을 경계하는 길고양이, 오랜 세월로 깨어진 벽돌 틈, 그 사이로 새롭게 피어나는 새싹들, 바람을 운반하는 나무들의 소리.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을 탐색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끝에는 '본질'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는 느린 시선을 통해 새로운 가치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나' 자신이었고, 그다음은 '고양이' 그리고 그와 연관된 '생태계'로 이어지면서 세계가 확장되었다. 글은 말보다 느린 성질을 가졌다.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리고, 상대방에게 전달되기까지도 길면 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글은 반드시 멈춰야지만 읽을 수 있듯이 느린 성질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인간은 지칠 줄 모르고 돌아가는 기계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멈추고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유를 통한 성장'에 다다르게 된다. 


완행열차를 타는 방랑자
photo by Unsplash

 

나는 산책을 통해 '나'와 그리고 '세상'을 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림의 가치'로 찾아내는 '본질'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급행을 타던 인생에서 완행열차를 타는 방랑자가 되기로 했다. 평생 '여유'없이 급행을 탄다면 완행열차만이 멈추는 구간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평생 만날 수가 없다. 느리게 가야지만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어쩌면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사각지대에 머무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급행이 멈추는 곳에 살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완행열차를 타고 유유히 떠나는 방랑자가 되어 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