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아픔을 드러내는 책임

by 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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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차인표 배우가 위안부 여성들을 위해 쓴 소설을 만났다. 그는 무려 10년 동안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한 토크쇼에 나와 소설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아픔과 치부를 드러내는 것에는 무게 있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류와 오해가 없어야 하며 뜻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는 만큼 그걸 전하는 작가에게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플롯을 짜고 대사 하나하나에 공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첫 책을 쓰기 전, 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자료조사를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주인공에 대해 어떠한 공부도 하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작가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럴싸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아니다. 이 사회에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 세상에서 바뀌지 않은 악의에 대해 틀렸다는 걸 또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결국, 작가에게 더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니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지 않은 글은 작가로서 가치 없는 글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사회를 대변해야 하며 그들의 삶은 이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매일 책상에 앉아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여전히 난 그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마음과 그래도 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이기적으로 나를 보존하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혼란스럽게 뒤섞인다. 작품보다 작가가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 보면 첫 책 <저의 보호자는 고양이입니다>에 썼던 '이 책의 주인공은 도도입니다.'라는 문장은 거짓이 돼버린다.


내가 주목받고 싶어서 도도를 도구로 사용한 작가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이 세상에 목소리가 필요한 존재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지, 그래서 얼마만큼이나 세상이 원망스러울지를 생각해 본다.




작가는 그 대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들의 아픔이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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