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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Nov 22. 2024

지혜로운 재택생활

집에서 일하면 정말 꿀이겠다!



나는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다. 바로, 꿀 빨면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어디를 가도 '재택 생활'을 한다 하면 다들 '집'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부러워했다. 집에는 잔소리하는 대표도, 감시하는 부장도, 일 못하는 후배도 없지 않냐며 하소연을 늘어놓다가 일자리가 더 없는지 부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재택 생활을 해 온 사람으로서 재택근무는 비추하는 편이다. (왜냐고? 재택의 실체를 알려주겠다)

나의 재택의 역사는 무려 5년 전에 시작되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단 말이 이렇게 쓰일지 몰랐지만 그렇다. 나는 첫 회사에서 재택이란 단추를 끼워버렸다. 작은 회사여서 재택을 선호해서 시작했는데 한 회사에서 무려 3년을 일했더니 재택 경력만 무럭무럭 쌓여버렸다. 



일단, 재택의 장점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했다. 편안함. 그리고 감정 소모 없는 삶. 심플하지만 강력한 매력이다. 나도 처음에 재택근무할 때는 좋은 게 많이 보였다. 늦잠 자도 1분 전에 잠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다시 잠들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씻지 않고 잠옷 입고 일해도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 1초였다. 그뿐인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없어서 간섭하는 사람도, 혼내는 사람도 그리고 사적으로 스트레스는 주는 관계도 없었다. 그냥 일만 하고 퇴근하면 자유였다. 

그러나 재택을 1년 넘게 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재택의 장점은 곧 단점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통제성이 없어지자 스스로 통제를 해야지만 일을 할 수 있었다. 결국, 편하게 일하는 게 장점이 아니라 단점인 것이다. 편한 상태에서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면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수를 한 적도 많았다. 또한, 관계가 필요 없다 보니 일 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트러블이나 고민은 없었지만 반대로 함께 일하는 기쁨과 즐거움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일을 해도 일에 대한 열정을 계속 가지고 있기가 쉽지 않았고 또한 어디를 가도 일에 대해 딱히 나눌 에피소드나 썰 같은 게 없어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일은 하나 계속해서 백수처럼 고립된 생활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재택근무를 몇 년 하지 못하고 그만둔 건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 인 나에게조차 재택은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선물해 줬다, 그러니 웬만하면 재택보다는 좀 번거롭고 멀더라도 사무실에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재택 생활 2년을 끝으로 회사 생활을 했지만 작가와 겸업을 하기 위해 다시 재택 생활로 돌아왔다. 대신, 이전과 같은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일단, 재택 생활을 하려면 시간에 누구보다도 더 철저해져야 한다. 나는 24시간 시간표를 가지고 살며 매일 아침마다 타임 테이블과 투 두 리스트를 꼼꼼히 짜서 계획대로 철저하게 움직이려고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삶의 밸런스가 깨지기 너무 쉽기 때문이다.

내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상’과 ‘수면’시간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루틴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일정한 수면시간과 패턴, 그리고 규칙적인 식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생체리듬과 직결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매일 해야 하는 글쓰기를 상황에 따라 오전에 할 수도 있고 오후에 할 수도 있지만 수면과 식사 시간이 틀어지거나 평소와 달라지게되면 서서히 나의 몸에 반응이 온다. 대표적으로 잠을 정상적으로 안 자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미디어 자극을 더 찾는 경향이 있으며 밥을 제대로 안 챙기게 되면 곧바로 식욕이 떨어져 점점 더 식사량이 줄다가 밥을 제대로 안 챙겨 먹어서 면역력에 문제가 생기는 지경에 가게 된다. 



또한, 나는 항상 1시간 타이머 시계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면서 1시간 단위로 일을 끊어서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빨리해야 한다는 감각 자체가 사라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마치 회사에 출근하듯이 방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갖춰 입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집에서 입는 옷 중에서도 평상복과 작업복을 구별해두고 깨끗이 씻고 항상 사무실처럼 방 안을 깨끗이 만들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재택 생활은 스스로가 일을 감시하는 부장 역할도, 청소를 하는 인턴 역할도, 근무를 평가하는 오너 역할도, 무엇보다도 일을 스스로 하는 근무자 역할도 모두 다 해내야 하는 것이다. 재택 생활을 하고 싶다면 그전에 스스로 무언가를 통제하는 능력부터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재택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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