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가 막히는 꿈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과 힘든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 고통을 겪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코뼈에서부터 미간까지 쭉 이어지는 찡한 느낌에 잠에서 깬 뒤, 난 곧바로 휴대전화를 켜서 검색을 했다. 방금 전 꿈속에서 봤던 변기가 꽉 막히는 장면 때문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변이 막힌 변기를 처음 보았다. 상상금지) 분명 여러 가지 스토리가 가미된 꿈이었지만 의식에 남아있는 건 그 한 장면뿐이었다. 몇 달 전, 대왕문어꿈을 꿨던 때와 상황은 비슷했으나 꿈 해몽이 이번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지금 나의 상황이 변기처럼 꽉 막혀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심리적 압박감이 나의 무의식을 이미 지배한 모양이다.
최근, 다음 작품에 대해 구상하면서 매일매일 막힌 변기처럼 답답하고 막막한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에세이는 금방 쓰지!'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었고 매일 5페이지 이상의 글을 쓰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생각이 말라가는 게 느껴졌다. 막상 써보니 아이템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은 후 똑같은 아이템을 다르게 변형시켜서 아닌척하고 내보기도 하고 뜯어서 두 개로 만들어서 양을 늘려보기도 하는 수작 중에서도 개수작을 부리는 요령만 늘고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어찌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며칠 동안 답답하고 식은땀 나는 불쾌한 꿈을 꿨지만 변기가 막히는 꿈으로 심리적 압박감이 절정에 달하면서 난 아침부터 깃발을 흔들며 항복하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7시 기상도 무시한 채 무려 1시간을 더 침대 위에서 끙끙 거리며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에게 있어서 늦은 기상은 모든 걸 다운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9시 되기 전 끝내야 하는 알찬 아침 일과들은 자동 삭제되고 허겁지겁 눈곱만 떼고 아침을 대충 먹은 뒤 출근을 한다. (물론 재택근무라 방으로의 출근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다음 일정이 모두 다 힘을 잃어버린다. 하기 싫음 단계에 자동설정이 돼버린다. 그때 나의 마음은 '어차피 이미 망한 거 몰라!'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뚫어뻥!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작가 일상에서 텐션이 급격히 낮아지면 하루가 아니라 몇 달을 침대 속에만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이럴 때 더 이상 동굴로 들어가지 않도록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바로, 맛있는 음식 먹기!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 직방으로 통하는 보상을 바로 투여하는 것이다.
나에게 1순위 최애 음식은 영원히 '떡볶이'다. 특히나 특정 브랜드에 매콤한 떡볶이는 답답한 모든 걸 뚫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직방이다) 급한 오전 일과를 끝내 놓고 배달비가 들어도 최애 떡볶이 배달을 주문해서 혼자 경건하게 이 순간을 맞이한다. (굳이 같이 먹을 동료까지도 필요 없다)
후하후하. 맵고 뜨거운 떡볶이를 먹다가 달달한 복숭아 음료를 마시고 느끼한 튀김까지 국물에 찍어 먹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회로가 변하기 시작한다. 배불리 먹은 뒤 낮잠까지 맛있게 자고 일어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릿속에 똥이라도 들었잖아?!
내 변기가 막힌 건 똥을 안 싸서 그렇다! (어디까지나 꿈속에서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꿈풀이처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 건 똥을 너무 많이 싸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똥을 안 싸서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변기가 나라고!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순간이다. 그러니까 내가 꿈속에서 본 수많은 똥들은 버려지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심리적 압박감으로 뱉어내지 못한 나의 수많은 똥들인 것이다. (오 이렇게나 쌀 똥이 많다니!)
난 이날 즐거운 마음으로 똥에 관한 똥 같은 이야기를 써냈다. 뭐 어때. 어쨌든 하나는 또 비워냈으니까 그걸로 된 거야.
ps. 내가 유난히 똥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나의 최애 웹툰인 ‘낢이 사는 이야기’가 다시 돌아와서이고 그래서 잠들기 전에 순식간에 10편이 넘는 웹툰을 소화시켰는데 하필이 그중 똥 이야기가 나와서 그렇다. 그러니까 이건 ‘낢이 사는 이야기’ 웹툰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 쓴 글이다. 똥 이야기조차 소재로 쓰는 작가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