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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13. 2024

따뜻한 달고나 라떼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게 있다. 따뜻한 달고나 라떼. 태어나서 달고나가 들어간 음료를 마셔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흔하지 않은 메뉴다. 기억에 쫓아가보면 무려 3년은 더 된 기억이다.  오늘은 한 달 중 가장 예민해지는 날인데 난 그날의 감정 동요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들을 마련해 두는 편이다. 


첫 번째는 변하지 않는 규칙인데 바로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다. 감정의 어디로 날뛸지 모르는 날에는 최대한 누군가와 교류하거나 대화를 하며 소통하기보다 혼자서 따뜻한 공간에 머무는 선택을 한다. (덕분에 내 안에 있는 예민보스가 나오지 않은지 꽤 됐다)


두 번째는 밀가루 음식을 마음껏 먹기다. 평소에는 최대한 인스턴트는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날 만큼은 생각나는 자극적인 음식은 다 해치워 버린다. 이 또한 매 번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는 그리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오늘 아침과 점심을 대충 먹고 오후 4시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매우 만족한다)


세 번째는 일과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다. 오늘은 다른 달보다 특히 예민하기 좋은 날이다. 회사에서 일에 있어서 스트레스받을만한 일이 오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다음 빡빡하게 짜여 있는 나의 오후 일과들을 보니 배가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 매일 루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역시 스트레스에는 쉼이 최고다)


이렇게 세 가지 규칙으로 매 달 이리저리 애쓰다 보면 나에게 가장 위험한 하루가 무난하게 넘어간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불청객 손님이 있다. 매 번 오지 않지만 한 번 오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바로, 추억에 빠지는 것이다.




현재 시각 5시 30분, 무난하게 1번부터 3번까지 소화하면서 울적했던 마음이 다시 회복되려던 찰나 나를 스치고 지나간 한 가지가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왜 지금 떠오르고 X랄이야) 


나는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나머지 일과도 거의 다 삭제하고 침대에 누워 고양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침대 위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어라? 그런데 갑자기 내 피드에서 우연히 예전 전남친과 카페에서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고 나는 순식간에 그때로 추억여행를 떠났다. 


그날은 지금처럼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우리는 외곽으로 나와 맛있는 저녁을 한 뒤 다시 되돌아오던 중이었다. 중간에 갑자기 달달하고 따뜻한 음료가 먹고 싶었고 그게 운 좋게도 전남친과 통해서 근처 카페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게 이름은 전혀 이거 나지 않지만 마당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있었고 카페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전남친은 무엇을 시켰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난 분명 '달고나 라떼'를 주문했다. 


"달고나 라떼, 마지막 한 잔 남았습니다"

가게 사장님은 라떼 위에 올라가는 별모양 달고나를 소량 만든다며 마지막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축하해 주셨다. 우리는 테이크 아웃을 해 차 안에서 히터를 틀고 카페 외곽에 반짝이는 조명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셨다. 달고나 라떼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료 중 가장 달달했다. (와 이게 뭐야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난 추억에 젖어 들어 '달고나 라떼'를 검색해 주변 카페들을 탐색했지만 결국 그 카페는 찾지 못했다. 결국 계획대로 감정을 잘 추스르는가 싶었더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난 글 쓰는 것도 잊은 채 하루종일 달고나 라떼 생각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다.


그놈의 달고나 라떼,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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