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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2. 2024

라따뚜이는 '상상력'으로
요리사가 되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선호'보다는 '불호'에 가까운 동물이 있다. 바로, 더러운 식당이나 장소에서 발견되는 '쥐'다. 대부분 쓰레기장이나 하수구 근처에 살기 때문에 세균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쥐'를 피하게 된다. 


'라따뚜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식당에서 가장 초대받지 못하는 손님을 식당 주인으로 만드는 생각의 전환인 것이다. 쥐가 요리사가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귀여운 외모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통해 이미 '라따뚜이' 속 요리사 쥐에 푹 빠져버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절대미각을 가진 하수구 쥐  
라따뚜이 (2007) 


주인공 '레미'는 어느 쥐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쥐다. 레미가 포함된 무리는 어느 시골집 천장에 숨어 살고 있었다. 주식은 인간들이 먹다 남긴 상한 음식이다. '레미'에게 다른 쥐들이랑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타고난 '미각'이다. 그래서, 그저 '먹는 행위'에 만족하는 다른 쥐들과는 다르게 레미는 '먹는 행위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왕이면, 상하지 않는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먹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된다. 


'레미'는 TV 너머로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걸 동경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세프 구스토가 그에게는 롤모델이었다. 구스토가 남긴 명언 때문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레미에게 그의 말은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쥐들의 세상에서 그의 재능은 그저 '쥐약검사'에 유용한 도구일 뿐이었다. 쥐가 인간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가 된다는 가정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신분'은 곧 그들의 가능성까지 제한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겐 반드시 '동료'가 필요하다
라따뚜이 (2007)


대부분 우리는 '꿈'을 이룰 때 '혼자'가 아닌 '조력자'가 존재한다. 모든 걸 스스로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한다면 그 시간 동안 경제적 &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해 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회사가 될 수도 있고, 투자자가 될 수도 있으며 하물며 옆에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친구들 포함된다. 이처럼,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혼자' 이룰 수 없다.


'레미'가 주방 퇴치 1순위 '쥐'의 신분으로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레미'는 절대 요리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바로 세프 구스토의 숨겨진 아들 링귀니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으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요리를 치명적으로 못했다. 그 또한 '레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만 덕보는 게 아닌 함께 윈윈 하는 사이였다.


그들이 함께했기에 서로가 원하는 '요리사'의 꿈을 같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상상력 하나로 요리사가 된 쥐
라따뚜이 (2007)


'레미'가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상상력'이다. 쉽지 않은 요리사 길을 포기를 하려 할 때 '레미'가 스스로 만들어 낸 구스토 영혼이 이런 말을 한다. 그는 '레미'에게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난 너의 상상력이 자유로울 때만 존재한단다"


'레미'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던 '구스토 영혼'은 사실 '레미'의 '자의식'을 상징한다. 그는 '쥐'라는 위치에서 인간을 피해 상한 음식 먹는 삶을 살면서도 언젠가는 최고로 멋진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쥐라는 이유로, 상한 음식을 먹는 존재라는 이유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절대로 '요리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상상할 때에만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생긴다. 모든 건 '상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상상하며 사느냐가 결국 어떻게 사느냐의 첫 시작이다. '레미'는 레스토랑에서 멋진 요리사로 일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살았기 때문에 '상한 음식'을 먹는 삶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에서 벗어난 쥐
라따뚜이 (2007)


동물들에게 '먹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보다는 '배를 채우는 것' 자체다. 먹는다는 건 한 생명체가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생존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들에게 '먹이'는 맛보다 양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쥐들은  '맛'을 평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쥐답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레미'만이 본능을 너머 자신만의 '의미' 찾기를 갈망한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배불리 먹고 자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오늘 하루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 이상은 꿈꾸지 않는다. '레미'처럼 왜 쥐는 '상한 음식'을 먹어야 하며, 인간처럼 '맛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가 불가능한지 의문을 갖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수구에서 상한 음식을 먹는 어디에나 있는 쥐처럼 살게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모른다. 왜 '쥐'이기 때문에 '상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말이다. 


'쥐'가 '요리사'가 되는 신선한 이야기 끝에 우리에게 남아야 하는 건 '재미'가 아니다. 나는 인간임에도 '쥐'처럼 '먹는 행위'에만 만족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상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는 '상상'에 의해 변화되었다.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특별함은 동물보다 낫다는 우위성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상상력'을 통해 '먹는 행위'에 멈추지 않고 '레미'가 그랬던 것처럼 본능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 받았기에 꿈꾸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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