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안됐다. 이전 두 번의 선교처럼 지나고나면 흐릿한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인간적인 마음이 컸다. 현장에서도 자주 지쳤고, 빨리 이 프로그램이 끝나길 바랐고, 얼른 샤워하고 싶었고 특히 매순간 비누로 벅벅 문지른 손을 깨끗한 물에 닦아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여러 느낌들이 나를 불쑥 불쑥 찾아왔지만 내 감정을 표현할 이렇다 할 단어들을 찾지 못했다. 나눔 시간에는 두루뭉술하게 의무적으로 느낀 점을 내뱉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몇 장 찍지도 않은 사진을 보니 새삼스레 사진 속 사람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분명 직접 만나고 웃고 인사하고 손을 잡고 포옹하던 이들인데, 그 시간이 무감각하다고 느꼈는데 돌아보니 참 많이 그리웠다.
예다나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이가 손등에 정성스레 그려준 그림들
기억나는 순서대로 쓰자면.. H 지역(선교사님의 사역을 위해 지명을 밝히지 않겠다.) 아이들과 시내 백화점의 실내 놀이터에 갔던 추억이 많이 생각난다. 그날 내 '내면의 아이'를 만났다.
이날 아침 예배 때 목사님은 눈물의 고백을 하시며 선교 팀원들 각자가 내면의 아이를 만날 수 있길 축복해주셨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내놀이터에 입장한 순간 '26살, 무직, 한국인 여성 권지혜'라는 자아를 내려놓고 6살 대학로에서 코 흘리며 골목을 누비던 어린이로 변했다. H 지역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흥분했고 뛰어들었고 달리고 타고 던지고 밀고 돌리며 쏜살같은 2시간을 보냈다. 비록 이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내 내면의 아이가 불쑥 튀어나왔고 참 많이 치유받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도 그들에겐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이다
H 지역 아이들은 백화점에 입장해서는 그들이 상상해본 적도 없을 명품 매장의 쇼윈도와 상상도 못한 규모의 공간과 자신들이 짧은 인생 동안 봐왔던 세상이 180도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백화점은 한국의 일반 백화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내 손을 잡고 걷던 전통 옷을 차려입은 아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침을 흘리기도 했다. 이 아이들도 내 내면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실내 놀이터에 입장해서는 그 비현실적인 세상을 잊고 초현실적인 행복을 만끽하며 노는 데만 집중했다.
생전 처음 타본 커다란 45인승 버스, 자신들 옆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건네는 하얀 얼굴의 사람들, 마을을 조금 벗어나자 보이는 커다라 다리와 큰 강,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들, 거리 가득한 자동차, 커다랗고 높은 건물, 움직이는 계단과 밝은 실내, 깨끗한 변기와 세수대…
하루만에 자신들이 알고있던 세상의 범위가 초현실의 세계로 나아가버린 아이들은 그 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며 잠들었을까? 열등감 대신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날들 중 하루로 기억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R 지역의 아이들에게는 미안함이 크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그렇게 사랑해줬는데. 체력을 비축한다는 핑계로 에어컨 방에 들어가있지 말고 아이들과 가위 바위 보라도 하고 더 함께 있을 걸. 내가 뭐라고 너희들은 경계없이 그 큰 사랑을 나에게 흘려보내준 걸까?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음엔'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함께 했던 다른 청년의 고백처럼 그 아쉬움이 다시 미얀마 땅을 발게 할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이 참 소중했고 받은 사랑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예다나, 요요, 삐에삐에, 삐에송, 익킨, 타코, 모모, 피터…. 몇몇 이름이 내게 남았다. 스무명 남짓한 이들의 얼굴이 가슴에 남았다. 가슴으로 품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나의 일이다.
R지역에서의 마지막 사역 날. 아이들이 장미꽃을 사와 우리에게 건넸다.
지난 주일, 선교 평가회에서 나눔을 하며 고백한 게 있다.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선교를 통해 처음 만난 선교사님을 사랑하게 됐어요.' 냉혈한(틀린 어휘지만)이라고도 고백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내 안에 사랑이 생겼던 거다. 아이들을 향한, 아이들을 지켜내는 선교사님을 향한, 소망 없는 그 땅을 향한. 연약한 육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며 귀하게 쓰임받는 선교사님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아이들과 함께하길 원한다. 그를 많이 사랑하고 축복한다.
선교를 마치고 다음 날 가족들과 차를 타고 가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이적의 <다행이다>를 틀어달라고 했다. 익히 알고 있는 노래인데 그 날 새로운 노래가 됐다. 찬양은 아니지만 선교사님의 R 지역 아이들의 노래 같았다. 진짜 엄마보다 선교사님을 더 엄마처럼 생각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읽으면 가슴이 참 뭉클하다.
그대를 안고서 힘이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겨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 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거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가사에 그들의 삶을 대입하면 정말 이렇게도 정직한 가사가 있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엄마이자 어떤 의미에서 전부인 선교사님을 향한 '담백한' 고백같다. 이 노래가 선교사님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