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입자는 중국 부부셨는데 중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큰 짐은 옮기고 차도 팔았다며 그 이후에 소소하게 남은 세간살이는 처리할 방도가 없으니 그냥 두고가도 되겠냐고 하셨다. 있으면 다 쓸모있는 것들이라고 애원같은 부탁을 하셔서 우리는 이사도 하기 전에 알겠다고만 해둔 상태였다.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둘,
침대는 없었지만 침대 옆에 놓는 사이드테이블 2개,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큰 냉장고를 써본 적이 있었나.
낡았지만 놓고가신 냉장고엔 먹던 반찬도 그대로.
한국에서 모텔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방 한쪽 구석에는 **모텔이라고 적힌 하얀 수건이 가득 쌓여있고 심지어 사용하시던 이불까지 그냥 다 놓고 몸만 나가셨나보다.
기분이 조금 묘했지만 그려려니 했다.
쓸 것은 쓰고 아닌 것은 잘 정리해서 버리면 되지 뭐.
우리는 집보다 흙이 있는 마당이 너무 신나
봄이 오니 그곳에 무얼 심어볼까
작지만 풀도 뽑고 밭을 갈고
시장에 가서 모종도 사와야지
오이? 상추? 깻잎?
한껏 마음이 들 떠 있었다.
그 곳에서 여보씨와 며칠 밤이나 잤을까.
택배 이삿짐을 다 배달 받기도 전에 나는 다시 3개월동안 떠나있을 짐을 챙겨야했다.
올해까지만 농사를 짓고 다음부터는 엄마랑 벚꽃구경도,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닐거라던 아빠는 딱 마지막 농사라던 그 해 봄 비닐하우스 가득 방울 토마토를 심어놓고 재발된 암 때문에 함암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계셨다.
2주에 한번, 3박4일씩 천안 순천향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고 집에 가는 아빠.
아빠는 눈에 띄게 기력을 잃고 수척해져 갔다.
아빠는 더이상 농사지을 몸이 아니었고
엄마는 그 많은 방울토마토 농사를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오빠는 파주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직장인이다.
그런 오빠가 부모님의 비닐하우스 일이 바쁘다고한들 현실적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은 멀지만 다녀가는 주말이 다 일 뿐. 아마 나도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꾸렸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도 없고,
친정 근처로 이사를 해
마침 출퇴근을 하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은 간절히 일손이 필요하시고,
여기에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나의 상황을 너무나 잘 보듬어주는여보씨까지.
나는 그렇게 짐 가방을 들고 친정행 기차에 올랐다.
심어놓은 방울토마토가 끝날 때까지만 딱 3개월이었다.
이전 세입자 분들이 놓고 간 짐이든,
아직 풀지 못한 우리 짐이든,
그렇게 어질러진 집에 여보씨만 혼자 남겨놓고 떠나는게 참 심란했다.
일주일에 서너번 영어 가르치는 일을 막 시작한 여보씨는 주말에 가겠노라 말하며 우린 그렇게 아산 기차역에서 헤어졌다.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