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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Jan 28. 2020

자주 여행을 상상한다

일상이 덜 익은 감처럼 텁텁해질 때면 홀로 떠나는 여행을 상상한다. 또는, 일상에 녹아져 버린 근심들이 마음의 잔잔한 물 위에서 뻐끔뻐끔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 훌쩍 떠나버리는 상상을 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티켓을 끊고 이동수단에 몸을 실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 그렇게 하면 나의 짤수기 같은 뱅뱅 도는 일상이, 바위를 실어 쩌-아래로 묵히려 해도 기어코 동동 떠오르는 근심들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아서.



그곳에서 나는 발이 닿는 대로 목적지 없이 걷다 우연히 만난 어느 음식점에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찾아서 먹지 않는 낯선 음식을 시켜보고는 이내 실망한다. 그 실망이 싫지만은 않다. 나름 모험이었기에 그 마음도 기분 좋게 감내한다. ‘이만큼의 돈을 지불해도 되는 음식인 건가.’ 막상 돈을 내려하니 갸우뚱해버리는 나의 머리를 감출 수 없으나 여행비를 넣어 둔 봉투를 주섬주섬 꺼내어 주인에게 건네준다. 음식점에서 나와 또 걷는다. 길가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벗 삼아 이곳저곳 여행자처럼 휘적휘적 걷는다. 그리고 발견한 벤치에 앉아 밍밍하지만 자꾸 손이 가는 아이스크림을 후딱 끝내버린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일상다운 일상을 보내었으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일상을 보자니, 나의 일상과 근심이 그리워진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 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떠나는 것이 나의 마음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생각했다. 지난 한 해 적어둔 버킷리스트에 여행지는 가득했으나 떠나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일상은 여전히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근심은 사라진 줄 알았으나 날로 날로 개체수를 늘려가며 총량의 법칙을 고스란히 이행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지에서의 오롯이 혼자인 나를 상상했고 지금도 상상한다. 떠나고 싶어 했던 그곳에서의 ‘나’가 조금 그리워지고 애틋해지는 마음이, 그리고 돌아와서 ‘나’를 맞이했을 때 이내 반가워지고 소중해지는 마음이 좋아졌다. 조금 멀어진 곳에서 보게 되는 근심과 걱정도 사라지지 않아 주어서, 잔잔히 뭍에 올라 있어 주어 또 좋아졌다.


그 마음들을 마주하게 되는 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아지지 않은 마음보다는 나아가는 힘이 생긴 마음의 근육들이 나의 일상을 촘촘히 살아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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