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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r 30. 2020

강이 담고 있는 생각들

한강의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날이면 창가에 앉는다. 다리를 지나며 볼 수 있는 강과 마음속 대화를 청하려면 가까운 편이 나을 테니까. 그 날은 운이 좋게도 버스가 한산해 뒷좌석 오른쪽 창가 자리가 비어있었다.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날들이 연속되던 그 해, 그날도 달에게 내어줄 자리를 시샘하듯 해는 온 힘을 다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냉큼 빈자리에 앉아 강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모습을 드러낸 새카만 강의 표면에는 나이테와 같은 잔잔한 주름들이 끝도 없이 일렁였다. 포근한 햇살은 그 표면을 비추며 반짝이는 빛의 굴곡들을 만들어내며 함께 춤을 췄다. 모순되거나 어긋남이 없는 조화로운 움직임. 그 어느 하나 조화롭지 않은 서울 한 복판에서 완벽한 조화를 보자니 차가 조금은 막혔으면 했다.



그 강을 보며 누군가는 지난 첫사랑을 곱씹어 보기도 할 테고 그 누군가는 지난 인생의 파노라마를 훑으며 깡소주 한 병을 꿀꺽였을지도 모르고. 또 그 누군가는 강가를 산책하며 연인과 사랑을 속삭였을지도 모르며 그 누군가는 일렁이는 강을 보며 다가오는 인생을 위한 중대한 결심을 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같은 강을 보며 다른 시간 속 다른 생각들을 한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들을 강은 말없이 담아주었다. 그저 많은 사연들을 담은 채 중력에 따라 목적지도 모른 채 흐르기만 한다.  


강과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강과 같은 사람을 만나 함께 흐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기로 했다. 우리네 삶이 강의 모습처럼 언제나 잔잔할 수야 있겠냐만은, 일렁임 속 서로의 잔잔한 마음들을 기억하고 말없이 마음과 마음을 안아주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 서로를 향해 흐르는 마음의 목적지를 정의하지 않은 채 흐르는 대로 조화로워져 가는 우리의 모습을 기특해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강에 당신을 담아보리라 생각한다.


다리가 끝나갈 무렵 나의 마음을 읊조린 강을 눈에 담아보려 오래도록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강은 우리의 대화를 소리 없이 담아주었다. 희미한 미소를 짓는 듯한 일렁임을 보니 강과 함께 나의 마음도 잔잔히 일렁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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