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무(無)로 돌아갈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
* 때는 바야흐로 2018년 겨울, 코로나19가 오기 일 년 전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나와 남자친구(현 남편)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나와 남편은 남대문시장에서 만났는데, 처음에는 서로에게 별 관심도 없다가 같은 건물에서 매일 마주치다 보니 어쩌다 눈이 맞아버렸다. 187cm인 큰 키에 한 등치 하는 남편의 첫 모습은 흡사 양아치 같았다. 호탕한 성격에 능글맞고 술도 잘 마시는 남편을 난 처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고 사람을 경계하는 성격인 나는 나와 반대인 사람에게 선뜻 호감이 생기질 않았다. 나한테 호감이 없었던 건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알고 지내길 4년이 넘도록 서로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다. 남대문 직원 모임이 있던 날, 나와 남편만 빼고 다른 사람들이 불참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서로 서먹하기를 몇 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금세 앞다투어 먼저 말하려고 입을 다물지 않고 있었다. 대화가 그토록 즐거웠던 게 오랜만이라 나는 신이 났고, 남편도 그러해 보였다. 우리는 그날, 그동안 미뤄놨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술과 함께 쏟아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운명은 그렇게도 갑자기 *얄궂게 찾아오나 보다. 하여튼 그놈의 술이 문제다. 술이!
남편과 나는 만나면서 꿈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서 정말이지 끝도 없이 많은 대화를 했다. 현재에 머물러있기를 좋아하고 안주하는 게 편한 사람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변화를 즐기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계속 이렇게 직원으로 살다가는 미래가 없을 거라며 나를 흔들어 댔고, 나는 그 말에 넘어가 남대문을 그만둬 버렸다. 때마침 그때 나에게 번아웃이 왔고, 때마침 그때의 내가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던 터라 내린 결정이긴 했지만 남편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컸다.
사실 어쩌면 난,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새로운 곳에 이끌고 가 줄 사람을 말이다. 남편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퇴직을 한 우리는 퇴직 후에 뭘 해야 되나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했고 액세서리 가게를 열기로 결정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두 달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5년 동안 남대문에서 일했으니 그동안의 노하우 대로만 하면 잘될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마냥 꿈에 부풀어 현실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사장이 된다는 사실에만 꽂혀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합쳤더니 5천만 원이 조금 넘었고, 우리는 그 돈으로 신혼집 대신에 가게를 함께 열기로 했다. 창업과 동업을 동시에 하기로 한 것이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선택이었다. 그리 큰돈을 아무 생각 없이 장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쏟아부었다니, 어렸고, 당찼고,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액세서리 가게를 열기로 결정한 후 제일 먼저, 가게를 열 장소를 물색했다. 처음에는 서울 쪽으로 알아봤는데, 5천만 원이란 돈을 가지고 열 수 있는 가게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서울을 포기하고 내가 사는 곳인 부천으로 시선을 옮겼고, 우리는 부천역 사거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가게를 열기로 했다. 물론, 메인거리에 가게를 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역시나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는 보증금만 1억이 넘었고, 월세도 500만 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결국, 우리는 현실과 타협해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210만 원, 13평짜리 가게를 계약했다. 그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공실로 1년을 있었기에 *자릿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자릿세가 없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바보같이 나와 남편은 그걸 몰랐다.)
가게 위치는 메인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지만 종점인 버스정류장 앞이라 그래도 타고 내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물주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다 우리 가게의 손님이 될 거라는 듯이 말을 했고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어버렸다. 1년을 공실로 있었던 곳을 하루라도 빨리 쳐내고 싶었는지 건물주는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한테 가게를 넘길 거라는 초강수를 뒀고,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이라도 다른 사람이 나타나 우릴 가게를 뺏어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 오후, 나와 남편은 부동산으로 달려가 덜컥 가게를 계약해 버렸다.
* 가게 계약 시 주의할 점.
- 계약할 곳을 물색한 후 근처 부동산을 5군데 이상 돌아보고 결정할 것.
- 주변시세와 계약할 곳의 시세 차이에 대해서 알아볼 것.
-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무(無)로 돌아갈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
- 출, 퇴근 이동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체크할 것, 이동수단을 뭘로 할지 고민할 것.
- 월세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절대 장담하지 말 것!
*얄궂게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이 묘하고 이상하다. 예기치 못한 순간.
*자릿세
터나 자리를 빌려 쓰는 대가로 주는 돈이나 물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