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사장, 장사 첫째 날부터 혼을 쏙 빼다.
2018년 12월 그해, 남편과 나는 가게를 계약했다. 계약 후 오픈날짜를 언제로 할까 의논하던 중 우린 대목이라 생각되는 크리스마스이브날 매장을 오픈을 하기로 했다. 오픈날까지 남은 날은 겨우 3주였고 마음이 급했던 우리는 빠르게 인테리어 업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업자들은 통화할 때와는 다르게 미팅 때마다 부르는 금액들이 다 달랐고, 시간이 없었던 남편과 나는 혼이 다 나간 상태로 부모님과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우린 실외디자인을 전공하신 아빠의 힘을 빌리기로 했고, 드디어 원하는 방향대로 매장을 꾸릴 수 있었다.
매장 출입문과 창은 안이 다 잘 보일 수 있도록 투명한 통유리로 했고, 매장의 개방감을 위해 천장을 뜯어 천고를 높이는 대 공사를 했다. 매장 왼쪽벽에는 아치형 형태의 원목으로 헤어액세서리 등을 꽂을 수 있는 원판을 제작해 붙였고, 오른쪽 벽은 귀걸이를 디피할 수 있는 선반으로 제작해 붙였다. 매장 한가운데에는 손님들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반지와 팔찌, 목걸이들이 놓일 큰 장도 하나 짰고, 매장 안 제일 끝쪽에는 컴퓨터와 작업대가 놓일 계산을 할 수 있는 카운터를 제작했다. 카운터와 이어지는 창고사이에도 아치형 형태로 문 하나를 만들어 매장의 모습을 갖추도록 했고, 이제는 대망의 인테리어 꽃이라 불리는 조명과 간판만이 남아있었다.
남편과 나는 을지로 조명거리에 삼일을 출근했고, 고민 끝에 원하는 가게를 두 군데 골라서 마음에 드는 조명들을 하나하나 사가지고 왔다. 우린 우리 손으로 직접 조명을 다 달았고 어느 정도 완성된 매장을 보니 왠지 모르는 뿌듯함과 설렘에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조명 설치 다음날 남편과 나는 마지막 관문인 간판을 위해 홍대와 명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판은 매장의 얼굴이었기에 제일 중요했고, 초짜 사장이었던 우리는 그 당시 아리송한 포인트만 주는 액세서리 간판 트렌드를 따르기로 했다.
결국 우리의 간판은 이곳에서 뭘 파는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형태로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간판 디자인은 남편과 나의 영어이름 중 가운데 알파벳의 J를 하나씩 떼어서 각각 양쪽으로 뒤집어 붙인 모양으로 파이, 즉 3.14인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 간판이 시선은 끌어주었던 건 확실했다. 골드원판으로 번쩍번쩍하게 만들어 간판을 세워놓으니 제법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아리송한 간판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뭘 파는지 물어보기 일쑤였고 난 빨리 물건들을 채워서 그 질문들을 잠재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픈날까지 남편과 나는 매장을 쓸고 닦고, 단장하며 그 작은 공간을 수도 없이 걸어 다녔다. 내 가게라고 생각하니 출근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좋았다. 모든 것을 건 우리의 공간이었고,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가게는 하루하루 매장다운 모습으로 갖춰지고 있었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문제가 오픈날 터지게 됐다. 매장 안에 놓일 물건들이 모자랐던 것이다. 큰일이었다. 인테리어를 다 끝낸 후 일주일 동안 남대문과 동대문을 돌며 액세서리를 가득가득 사 왔는데도 13평짜리 가게를 꽉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과 나는 밤을 새워 가며 사가지고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며 가격표를 붙였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날 매장은 어딘가 모르게 텅 비어 보였고, 크리스마스이브날, 그렇게 우린 이른 오픈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크리스마스이브날이라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오픈 빨 이라고 해서 손님들이 제법 찾아왔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크리스마스에 걸맞게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된 옷을 입고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우린 큰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외쳐댔고, 손님들도 환한 매장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오픈날 낮엔 시어머님과 시아버지가 오셔서 조기에 실을 매달고 시루떡을 지어 고사도 지내 주셨고, 우리 엄마도 질세라 돈이 들어오는 그림인 큰 해바라기를 그려 매장에 걸라며 액자에 담아 오셨다. 그렇게 가게 오픈 후 첫째 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첫째 날 장사가 끝나고 우린 가게운영의 문제점에 대해 바로 대화를 시작했다.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고칠 점은 수두룩 했다. 먼저, 재고가 없이 딱 하나씩만 상품들이 있었던 터라 살 고객은 많았어도 팔 물건이 없는 게 문제였다. 예약까지 하고 찾으러 오는 일 또한 번거로운 일이었기에 그냥 놓쳐버린 손님들도 있어서 매우 아쉬웠었다. 우린 상품들을 재고를 재정비하기로 했고, 이른 오픈날의 실수를 발판 삼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첫날 장사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고, 아쉬운 점들로 가득했지만 초짜 사장인 남편과 나는 그래도 한걸음을 뗐다는 사실에 감격을 했다.
아직도 첫 오픈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정신이 없으면서도 설렜고, 바쁘면서도 한가했던 이상한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있는데 이 날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살면서 지나가는 것 중에 다시는 못 올 순간들이 있다. 사무치게 그리운 날의 기억을 안고 산다는 것도 큰 행운일 것이다. 그 시절, 난 나름 벅차게 행복했었다.
가게 인테리어 시 주의 할 점.
- 간판디자인은 대세를 따르는 것도 좋으나 무엇을 판매하는 곳인지 이왕이면 정확하게 명시대는 것이 좋다.
- 인테리어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다 보면 운영비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좋다.
- 인테리어 공사 중 주변 가게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미리 양해를 충분히 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면 거의 매일마다 매장을 가보는 것이 좋다. 작업하시는 분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해야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완성이 된 후에 후회해 봤자 늦는다.
- 인테리어 업자분들께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도 좋으나 조명 하나라도 직접 달아보는 게 좋다. 공간에 대한 소속감을 갖는 것도 장사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