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젊은 날, 모두에게 동등하게 허락된 20대의 짧은 청춘에 우울증 환자인 나도 한없이 즐거웠다. 내 삶의 가장 반짝거리던 시절, 매일이 즐거워서 나는 내가 다 나았다고 착각했다.
우울은 언제나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매 순간마다 내 상태를 살폈고 늘 경계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나를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울증 약은 이상하게 먹으면 살이 쪘고, 기분이 더 가라앉았기에 끊은 지가 오래였다. 다만, 나한테만 이런 증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약을 끊고도 몇 년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난 안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6년 3월의 어느 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공황이 찾아왔다. *공황발작이었다.
순간 가슴에 대못이 박힌 듯 숨이 쉬어 지질 않았고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온몸에 흐르고 가만히 서있을 수가 없어서 정류장 의자를 부서질 정도로 꽉 잡고 앉았다.
그때였다. 내 안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버스가 오기 전에 니가 먼저 차도로 들어가, '
나는 귀를 막고 속으로 대답했다.
'꺼져, 그냥, '
그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정류장에는 나 혼자만 있었고, 속으로 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 지나간다. 괜찮다. 내 곁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은 앞으로도 평탄할 것이고 나는 뭐든지 다 잘 해낼 수 있다. 우울증은 이미 오래전에 나를 비껴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넌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꺼져라, 왜 툭하면 와서 지랄이냐, 제발 꺼져라. 널 만나고 되는 일이 없다. 버티자, 버틸 수 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다. 저기 지나가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이럴 것이다. 행복은 무조건이다. 저 사람들만 행복하게 놔둘 순 없다. 결코 행복을 두곤 타협할 순 없다.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기에 괜찮다. 난 괜찮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점점 가빴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정류장 의자를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고, 감고 있던 눈을 떠서 하늘을 봤다. 먹구름이 낀 하늘에선 회색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오후 7시 17분, 헛웃음이 났다. 한 시간 같던 그 지옥 같은 시간이 7분 남짓한 시간이었다는 걸 안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괜찮아 진걸 어떻게 안 건지 집에 가는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후 홀딱 젖은 나는 죄인처럼 현관에 서서 집으로 좀처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본 할머니는 기겁을 했고, 우산이 손에 있는 데도 왜 안 쓰고 왔냐는 잔소리를 꽤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 공황발작이 와서 식은땀으로 샤워를 했다는 소리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고, 난 할머니의 잔소리를 무엇으로 막을까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치킨을 시켰다. 그날 할머니와 나는 치킨 두 마리를 해치웠고, 치킨을 먹으며 난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괜찮기를 계속 빌었다.
사실 공황장애가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몇 번의 증후가 있었지만, 보통의 삶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그 경고를 가벼이 무시해 버렸다. 음악을 듣다가,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조여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심호흡을 하거나 속으로 괜찮을 거란 최면을 걸며 버텼다. 보통의 어느 날은 잘 지나갔던 공황발작이 갑자기 그날 찾아온 건 일이 고됬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난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남들이 견딜 수 없는 긴 터널을 지나왔고, 어쩌면 아직도 끝나질 않았을 그 길이 난 이제 무섭지가 않기 때문이다. 난 남들보다 나약한 게 아니고 그 반대로 강하다.
*공황발작
증상 : 공황발작은 심계항진, 발한, 떨림 또는 후들거림, 가슴 답답함, 질식할 것 같은 느낌, 가슴 불편감 또는 통증, 메스꺼움 또는 복부 불편감, 어지럼증 또는 쓰러질 것 같음, 춥거나 화끈거리는 느낌, 감각 이상 등 자율신경계 증상과 공황발작으로 인해 파국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인지를 특징으로 한다. 공황발작 증상은 공황장애가 아닌 다른 불안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에서도 나타날 수 있어서 감별 진단이 중요하다.
대처 : 공황발작이 생겼을 때 그 자리에서 시도해야 하는 대처법은 3가지다. 첫째는 공황발작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복식호흡을 하는 것이다. 숨쉴 때 배를 움직이면서 배 안을 단단히 부풀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불어 아주 천천히 숨 쉬어야 한다. 셋 째는 병원에서 처방한 항불안제를 가지고 다니면서 증상이 나타날 때 바로 복용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효과가 확실히 입증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