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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나의 병, 명량함은 나의 성격!

먹구름이 해님으로 변하는 일은 결코 없다.

by 다정한 지혜씨 Feb 28. 2025

 

라디오 스타에 여에스더 의사가 나와서 '우울은 병이고 명량한 것은 성격'이라는 말을 했다. 이 짧은 말에서 나는 내 삶을 *정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소아 우울증으로 인한 여파가 커서 그렇지 원래의 난 명량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인연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걸 즐기며, 우중충한 날보단 화창한 날을 더 좋아했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 견뎌서 약속이 없어도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시끄러운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소란스러움은 좋아했고, 어딜 가나 난 나의 존재감을 어김없이 발휘했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들을 모아 장기대회에 나가서 춤을 출 정도로 쾌활하기도 했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는데, 튀기는 싫지만 어떻게든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소심한 성격의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만 서면 돌변하듯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재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등 하교 길 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을 때면 기사님이 하차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정류장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난 그때에도 주저하지 않고 당사자 대신 큰 소리로 '기사님! 문 열어주세요!!'라고 말을 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


4년 동안의 알바인생이었을 땐 웃는 얼굴로 면접을 한방에 붙을 수 있었고, 특유의 명량함과 씩씩함을 무기로 손님들에게 인기도 많았었다. 반짝거리던 청춘인 남대문 시절엔 우울함 속에서도 적당히 밝았으며, 일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 발바닥에 불이 날 도록 뛰며 열정적으로 임했고, 퇴근 후엔 다 벗어던지듯 신나게 놀았다. 여름엔 서울 시청 앞 잔디밭에 널브러져 광합성을 하기도 하고 겨울엔 일부러 명동거리로 나가 짧은 영어로 외국인들과 *프리토킹을 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 난 앞으로의 미래를 곧잘 긍정적으로 그려나가곤 다.


하나, 그 와중에도 우울의 그림자는 언제나 느닷없이 들이닥쳤고, 그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기에 벅찼던 나는 현실과 타협해 점점 조용히 살기 시작했다. 별 탈 없이 밝은 날들이 한 달, 두 달, 길게는 1년이 넘게 이어지는 게 감사했다. 남들의 평범한 하루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선물 같은 하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우울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본인의 존재를 드러냈다. 녀석은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한입에 먹이를 꿀꺽 삼키듯 교묘한 뱀처럼 날 괴롭혔다. 옛날 싸이월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알 텐데, 먹구름 모양의 비가 내리는 기분 이모티콘이 있다. 어느새 그 작은 먹구름이 365일 머리 위에 항상 떠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다.


언제나 가벼운 우울감은 항상 있었지만 매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 어떤 날은 수월하게, 어떤 날은 버겁게 지나가기도 했다. 계획형 인간이라고 자부했던 것들이 강박에서 온 습관이었고, 불면증과 무기력함이 우울증의 일종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소 생각이 과도하게 많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이 소아우울증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았을 땐 꽤나 슬펐다.


이십 대 초반,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난 뒤, 난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우울증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것들을 다이어리에 나열하고, 마음에 새겼다. 우울함이 극에 치달아 무서운 생각이 들 때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연습도 했다. 연습의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내면의 나는 항상 밝았기에 우울의 먹구름을 만나도 시간의 차이만 있을 늘 버텨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먹구름이 해님으로 변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시절 터놓을 사람이 적어도 나에겐 한 명 이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때론 하나뿐인 친구가, 그 시절의 연인이, 아니면 가족이, 여느 때나 옆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기에 난 버틸 수 있었다. 어쩔 땐 입을 열기에도 힘든 날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등을 내어주기도 했다. 주변의 여러 명의 대나무 숲이 있다는 건 참 복 받은 일이었다.




내가 읽었던 우울증 관련 책들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


* 직접적 우울증에 관한 책

추락 : 우울증 심연 일기 - 마드무아젤 카롤린 [이숲] 

우울할 땐 뇌 과학 - 앨릭스 코브 [심심]

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 바바라 포어자머 [웅진지식하우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동녘라이프]


* 힘이 되어 주었던 에세이

기분을 관리하면 인생이 관리된다 - 김다슬 [클라우디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김수현 [클레이하우스]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 최서영 [북로망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태수 [페이지2북스]




* 정의하다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다.


* 프리토킹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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