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언니가 되어 주기로 했다.

마음에 바르는 물파스를 쿠팡에서 팔면 좋겠다.

by 다정한 지혜씨

아이를 재우고 저녁 아홉 시 반이 되자 드디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유령 같은 몸짓으로 안방 문을 닫았다.

"수고했어, 여보"

리모컨을 만지며 낄낄거리고 있는 남편의 개미같이 작은 목소리에 실소가 터진다. 나는 곧이어 차가운 거실 소파에 드러누우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우, 오늘도 고생했다.'

칭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자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 핸드폰을 어디에다 뒀지…. 피곤해 죽겠는데….'

오 분 남짓 집안을 샅샅이 뒤지다가 아이 방 텐트 안에 잠들어있는 핸드폰을 기억해 냈다.

'후유…. 찾았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남편에게 흔들어 보이니 남편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같이 흔들어 준다. 뭔가 고맙다. 이런 게 동지애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또 터진다. 아이가 자고 나니 웃음이 헤퍼진다. 이상한 일이다. 핸드폰을 여니 오십 개가 넘는 카톡이 와있다. 곧이어 엄마와 언니의 대화가 눈에 들어온다. 대화의 물꼬는 엄마의 물파스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언니 : 엄마, 전에 나 바르던 물파스 사진 좀 보내줘.

엄마 :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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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 고마워 엄마, 이거 발랐더니 무릎이 하나도 안 아파. 쿠팡으로 시켜야겠다.

엄마 : 아픈데 김장은 어떻게 해? 이번 주에 김장한다며, 매일 여기저기 아파서 큰일이다.



언니를 걱정하는 엄마의 한숨 소리와 축 내려간 어깨가 우리 집에서도 보일 지경이다. 사진 속 초록 모자를 쓰고 있는 물파스가 의기양양해 보여 괜히 얄미운 기분이 든다. 저렇게 작은 녀석도 언니에게 힘이 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 존재인 것 같아 괜히 속이 상한다. 박하 향인 녀석은 살에 문지르자마자 아픈 곳이 치료가 되는 기적의 약으로 곧바로 언니의 쿠팡 장바구니에 담겼다.


언니는 요즘 러닝에 푹 빠져있다. 사실 요즘 대한민국은 거의 모두, 아니 나만 빼고 다 달리는 것 같다. 한강에서 올해만 해도 벌써 이백 건이 넘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왜들 그렇게 달리는 것일까? 나도 예전에 술만 먹으면 달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니는 아주 자주 종류를 바꿔가며 여러 자극에 종종 심취하곤 한다. 예전에는 수영, 또 근래에는 뜨개질, 하여튼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은 나와 정반대다. 무릎 뒤쪽의 연골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뛰었던 언니는 그토록 바라던 마라톤 대회에는 결국 나가지 못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개비 같은 언니는 육아와 일을 병행 중인데 하루도 온전히 쉬는 날이 없다.


얼마 전 언니는 건강검진을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몸 나이가 신체 나이를 이십 년이나 뛰어넘은 것이다. 건강검진표 나이가 예순하나로 찍혀있었을 때 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속상했을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까? 이왕이면 첫 번째 이길 바라본다.

아직 마흔하나 인 언니는 살면서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뭐든지 경험하고 나면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사람의 신체에도 자국이 남는다. 어떤 자국은 깊게, 어떤 자국은 약하게 말이다. 난 항상 언니가 불안하다. 추운 날씨에도 끈 민소매와 쿨토시를 하고 다니는 언니는 계절도 잊은 채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언니를 이토록 뜨겁게 달궈져 식지 않는 땔감으로 만들었을까? 갑자기 언니가 장작개비로 변하며 활활 타오르더니 곧바로 까만 재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속이 상한다. 이틀 후 언니에게서 물파스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사진과 함께 받았다. 사진 속 물파스 뒤로 넓고 정돈된 집이 보인다. 나는 또 속이 상한다.


세 식 구인 우리 집도 하루만 빨래를 안 하면 옷가지들이 넘쳐 나는 데 여섯 식구의 빨랫감은 백두산보다 더 높지 않을까 싶어서다. 다른 건 또 어떤가? 물론 여섯 식구가 사는 집이라 가구와 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이 곳곳에 차고 넘치는 그곳은 집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일터처럼 보인다.

주방의 식기들은 여느 식당보다 가짓수가 많고 두 개나 되는 냉장고는 코스트코를 방불케 한다. 물론 나와 엄마는 매번 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과일들과 채소즙, 과자, 냉동식품 등을 나눠 받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반짝거리는 사진 뒤에 물속에서 발장구 치는 오리로 변한 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채워지지 못한 마음을, 신체를 혹사하는 운동으로, 집안을 채우는 갖가지 물건들로 대신하는 언니가 안타깝다. 나는 가끔 언니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오늘은 좋아 보이네, 아직은 괜찮아.'

혼자 생각하고 내리는 상태는 언니보다 나를 더 안심시킨다. 어느 해 언니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기 위한 스스로 평가는 자기 위로에 가깝다. 어느 날 언니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도, 너처럼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날 난 결심했다. 언니의 언니가 되어 주기로 말이다.


언니 생각을 하며 한참을 소파에 기대 있던 나는 남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다. 자는 모습이 제일 이쁘다는 말은 아이한테만 쓰는 말이 아닌 듯싶다. 어느새 사람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진 소파를 뒤로하며 조용히 안방 문을 연다.

까만 방문 안에 아이의 천사 같은 실루엣이 보인다.

'너라도 잘 자니 다행이야.'

날개 잃은 천사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볼록 튀어나온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모든 것이 감사한 저녁이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마음에도 바르는 물파스가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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