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생각보다 간단하네?
두 번이나 다니게 된 대학생활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바로 ‘해외연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경기청년사다리’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합격자 공고문을 여러 차례 다운로드하여 보고 또 보았다.
7971명이 신청하여 29.5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였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 걱정부터가 앞섰다. 합격을 하고 나서도 기쁜 마음보다는 취소하고 싶었다. 미국에서의 한 달간 생활비와 언어의 한계, 극 I 인 나에게 새로운 도전은 더는 달갑지 않았다. 출국일정이 가까워질수록 법륜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더더욱 와닿았다.
‘인생이 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할 때는 말이야
안 되는 게 정상이다
꼭 이루어진다고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알아서 하십시오
되는 게 좋으면 되게 해 주시고 안 되는 게 좋으면 안 되게 해 주세요’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 극도로 긴장된 나를 돌보기 위해 여러 차례 법륜스님의 강연을 돌려보았다. 이 강연에서 법륜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이 남았던 것이 있었다면 한 어머니의 사례였다. 어머니께서 스님에게 아들이 지금 구치소에 있으니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스님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아들은 구치소에 나왔다. 그러나 구치소에 나온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법륜스님이 말씀하고자 한 것은 네가 원하는 데로 되어도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번 프로그램이 나에게 있어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정말 기회인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을 악몽으로 남을 것인지 지켜봐야 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많아졌고, 출국일이 되었다. 가족 같았던 남자친구를 남겨둔 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짐을 챙겨도 무언가 놓고 온 듯한 완벽하지 못한 여행으로 인해 떠나기도 전에 벌써 지쳐있었다.
그렇게 1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디트로이트를 거쳐 미국 버팔로에 도착하였다. 디트로이트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일 또한 순탄치 않았다. 혹시 몰라 서류를 영문진단서 등 다양한 서류를 준비했다. 모두들 먼저 입국 심사를 꺼려하는 상황에서 네가 제일 먼저 앞장섰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잠시, 깐깐하게 보이는 한 흑인 심사관의 말 속도는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I didn’t catch that.
그러자 나에게 심사관은 왼쪽,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스캐너 위에 올리라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이윽고 심사관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 온 이유였다. 한 달간 어학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J1비자로 발급받았어야 했는데, 어떠한 일인지 관광비자인 ESTA 비자로 발급받으라는 재단 측에 요청대로 우리는 이 비자를 갖고 입국심사를 했다. 입국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한국 가이드는 절대로 입국 심사관에게 공부하러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난 심사관에게 대학교에서 초청을 받았다고 하였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내게 물었다.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찰나 내가 갖고 있던 서류들을 다 보여주었다. 수많은 서류 중에서 그가 본 것은 영문진단서였고, 진단서를 본 뒤 나의 여권의 무언가를 기록한 뒤 입국 허가를 해주었다. 입국 심사가 끝난 후 다시 살펴보게 된 영문진단서에는 ‘studying’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운이 좋게 심사를 마친 뒤 다른 동기들을 기다렸다.
뒤이어 심사를 받게 된 다른 동기 또한 심사 허가를 받게 될 줄 알았지만 결국 심사 거부를 받게 되었다. 이유는 증명을 하지 못한 데 있었다. 그렇게 심사관과의 개인면담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동기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심사는 통과했지만 그것이 미국 한 달 살기의 시작이었다.
버팔로는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서른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지내게 될 곳은 버팔로 대학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성신여대 정도의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였다. 기숙사를 정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1인실, 3인실, 4인실이 있었다. 2명씩 짝 지어 지내게 될 줄 알고 미리 짝을 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양보를 해야 빨리 기숙사에 머무를 수 있었다. 모두들 이미 지친 상태였다. 결국 짝에게 양보를 구하고 각자 1인실을 택했다. 그것이 나의 선택의 실패인 줄 모른 채 말이다.
어렵사리 방을 정하고 난 뒤 시차적응으로 잠을 설쳤다. 조별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나의 첫 영어멘토는 Mobina였다. 2명의 남자, 나를 포함한 1명의 여자 동기들은 모두 외국인 친구에게 말을 붙이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꼈다. 아무 말 없이 서있는 것이 민망하다고 느낀 난 먼저 말을 걸었다.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등을 떠올려 가며 차근차근 말했다. 고맙게도 이를 알아들어 준 모비나는 내게 밝은 미소로 답하였다. 같은 팀의 동료가 모비나에게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어 했던 질문은 다름 아닌 ‘선크림’이었다. 외국에서는 선크림을 어떻게 말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인가 보다. 내가 선크림을 아냐고 모비나에게 묻자. 모비나는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크림에 대해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하자. 그러자 모비나는 무슨 말인지 눈치껏 알아듣기 시작하였고, 나의 말에 정성스럽게 답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비나는 우리에게 말했다.
“It is a sun skin!”
그동안 잘못 알게 된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윽고 모비나와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가면서 모비나에게 물었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문법과 발음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영어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과 문법 추천교재, 버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모비나는 내게 발음보다도 정확하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고, 문법 추천교재로는 성문, 맨투맨 교재도 아닌 그래머인유즈를 적극 추천했다. 영어 공부법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watching’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되는대로 영어 방송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직간접적으로 영어를 보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버팔로 대학원에 외국인 학생이 지원을 원할 경우, 아이엘츠 기준으로 6.5 점수를 획득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아이엘츠는 토플과 비슷한 형태로 시험을 치루게 되는데, 유럽 국가권 또는 호주에서는 주로 아이엘츠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토플의 경우는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엘츠를 물어봤던 이유는 아이엘츠 공부를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플, 아이엘츠 둘 다 응시료는 결코 싸지 않다. 4년 전에도 1회 시험 볼 때마다 35만 원을 지불해야만 했기에 해당 기관이나 학교에서 요구하지 않는 이상 토익을 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플과 아이엘츠를 해야 한다면 문법 등 자가 테스트를 통해 부족한 지식을 쌓아나가는 노하우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대 이후로는 영어를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다시 찾아온 미국인과의 대화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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